“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I will lie down and sleep in peace, for you alone, O LORD, make me dwell in safety.”(Psalms 4:8)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받는 복을 시편은 ‘풍성한 기쁨’(7절) ‘평안한 안식’(8절)이라고 합니다. 시편은 ‘큰 두려움과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신앙 때문에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을 소개합니다(2·3절).
가까운 이웃이 그를 괴롭힙니다. 사회·정치적 활동과 가난, 억울한 누명, 질병으로 힘이 듭니다. 이럴 때 보통 사람 같으면 밤잠을 설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평화롭습니다. 비록 남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따돌림을 당해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그를 흔들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지난날 자신을 도와주셨던 하나님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그는 오늘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눕자마자 편안히 잠이 듭니다(8절).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11
“In the morning, O LORD, you hear my voice; in the morning I lay my requests before you and wait in expectation.”(Psalms 5:3)
다윗은 아직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은, 맑고 순수한 아침(새벽)에 기도를 드립니다. 정한모의 ‘새벽을 예감하는 눈에겐 새벽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되고 소리 나기 이전의 생명이 되어’라는 시구가 생각납니다.
기도 드린다는 것은 ‘희생 제사를 준비한다, 제물을 배열해 놓는다’(레 1:8, 12) ‘할 말을 준비한다’(욥 32:14) ‘증거를 내놓다’(욥 13:18, 시 50:21)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인이 드리는 아침제사 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자신의 기도를 희생제사에 비견했습니다. 아침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기에, 기도 드리기에 가장 알맞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아침에 완성됐으니까요(창 1:5).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12
“Lead me, O LORD, in your righteousness because of my enemies- make straight your way before me.”(Psalms 5:8)
성경에서 ‘의’란 첫째 ‘징벌과 심판을 불러오는 의’, 둘째 ‘악을 진멸하는 의’, 셋째 ‘포용하며 보호하는 의’, 넷째 ‘구원하며 창조하는 의’ 등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본문에서 ‘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뜻이 알맞습니다.
‘원수’란 말에는 ‘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는 ‘독기(살기)를 품은 눈빛으로 나를 감시하는 자’(공동번역 ‘원수들이 지켜보고 있사오니’) 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무조건’ 자기편이 되어 달라는 대신에 주님의 의에 입각해 자신을 판단하며 인도하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원수와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인간의 길보다는 주의 길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13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시 5:12)
“For surely, O LORD, you bless the righteous; you surround them with your favor as with a shield.”(Psalms 5:12)
본문에선 보호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방패에 비유합니다. 전신을 보호하는 크고 튼튼한 방패입니다(시 7:10). 이는 가시나무에서 유래했습니다. 가시나무로 둘러친 울타리가 도적과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듯, 하나님 은혜가 대적을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칼과 창과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같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을 완벽하게 보호하십니다.
시편 5편은 초상집 분위기로 기도를 시작했으나 잔칫집 분위기로 끝납니다.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아무리 적대자들이 날카롭게 공격해 오더라도,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믿음에 시인의 마음은 든든합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14
“O LORD, do not rebuke me in your anger or discipline me in your wrath.”(Psalms 6:1)
화가 난 사람의 숨결은 거칩니다. 분노가 심하면 심할수록 숨이 가빠집니다. 여기서 분노란 말은 본디 코를 의미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말은 본디 ‘코가(숨이) 길다’는 뜻입니다. 숨이 코를 통과하는 시간이 길고 고르다면 그만큼 마음이 여유롭고 느긋하다는 뜻입니다. 인간 신체의 한 부분을 가리키던 이 말은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 됐습니다. 분노를 나타내는 또 다른 말은 본디 뜨거워짐, 흥분, 태양을 가리킵니다. 불같이 화를 낸다는 말이 있듯이 분노와 열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나봅니다. 그래서 화를 한자로 쓸 때, 불 화(火)를 씁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행동을 한 것일까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에게 진노를 쌓아놓는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한 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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