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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종류의 자기부인 | 운영자 | 2026-0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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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둘째주일 / 3.1절 기념주일] 두 종류의 자기부인 사무엘하 12:1–6 요한복음 18:15–18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기부인(ἀπαρνέομαι)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앞서 서 있으려는 ‘나’를 내려놓는 결단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나를 부인하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부인하는 선택을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체면과 안전, 관계와 이익을 지키려다 하나님의 뜻을 미루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 이후 자신의 체면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우리아를 희생시켰습니다(삼하 11:15). 그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의 자리를 먼저 지켰습니다. 나단의 책망 앞에서야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고백합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께서 붙잡히신 밤, “나는 아니다”(요 18:17)라고 말하며 제자의 정체성을 부인했습니다.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위험 앞에서 물러섰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이들이었지만, 두려움 앞에서 자신을 먼저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고백으로 돌아섰고,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는 주님의 질문 앞에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실패를 먼저 묻지 않으시고 사랑을 물으셨습니다. 진짜 자기부인은 강한 의지에서가 아니라, 사랑을 경험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두려움은 나를 지키게 하지만, 사랑은 나를 내어주게 합니다. 사랑에 붙들릴 때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3·1절을 맞는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섭니다. 나를 지킬 것인가, 공동체를 살릴 것인가. 침묵이 더 안전해 보일 때가 있지만,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기내어줌의 길이었습니다. 나 하나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습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 주님을 부인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나를 내려놓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부인은 손해가 아니라 생명의 길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이끌려, “나는 아니다”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3.1절기념주일 #두종류의자기부인 #자기부인 #사무엘하 #요한복음 #사순절 #사순절둘째주일 #그사랑에응답하라 #헌신과 자기부인 #주일공동예배 #주일예배 #설교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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