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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 정민중 | 2026-0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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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셋째주일]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3:18–21 마태복음 9:9–17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조건을 계산하고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계산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자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은 포로기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합니다. 나라와 성전을 잃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마저 흔들리던 때였습니다. 새 일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새 일은 이스라엘의 준비나 회개를 조건으로 시작된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 백성은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새 일의 목적은 단순한 상황의 회복이 아니라, 백성이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존재로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찬송하는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새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마태를 부르십니다. 마태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새 일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자격을 갖춘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을 통해 시작됩니다. 교회 역시 완성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며 따라가는 공동체입니다. 이어지는 금식 논쟁과 새 포도주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 일이 낡은 부대에 담길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낡은 부대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간의 기준으로 관리하려는 태도입니다. 새 일을 사모하면서도 익숙한 방식만 고집한다면, 은혜는 흘러가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새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주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미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는 새 일을 시작하는 주체가 아니라,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송하는 공동체를 통해, 세상은 오늘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새 일을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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