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禮拜) | 정민중 | 2025-07-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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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예배(禮拜) 미가 4:1–4 요한계시록 19:1–10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예배는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 앞에 마음과 시간, 에너지를 드리는 삶의 태도입니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권력, 돈, 인정, 쾌락을 예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참된 예배로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며, 그 통치 안에서 삶과 공동체가 변화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전해줍니다.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직전, 남유다 또한 도덕적, 영적 타락 가운데 있었던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는 “말일에 여호와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라는 비전을 선포합니다(4:1). 세상의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예배의 중심지가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민족이 그 산으로 올라가고,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자” 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기 원하게 됩니다(2절). 예배의 회복은 단지 예식의 회복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예배는 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따르겠다는 삶의 결단을 포함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칼은 보습으로, 창은 낫으로 바뀌고(3절), 더 이상 전쟁과 경쟁이 아닌 평화와 회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예배는 삶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또한,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 앞에 드리는 하늘의 반응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강력한 찬양으로 시작합니다(계19:1). 하나님은 불의와 우상숭배의 체계인 ‘큰 바벨론’을 심판하셨습니다. 억울하게 고통당하던 성도들의 눈물이,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응답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승리를 선포하는 예배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예배는 단지 감정을 고양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 앞에 자기를 낮추는 자리입니다. 그 중심은 하나님이시며, 그분 외에 어떤 피조물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10절). 그리고 이 예배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이어집니다(7절).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디어 하나 되는 구원의 완성이 선포되는 자리입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 연합하며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다시 하나님의 산을 향해 올라가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삶의 도구를 바꾸고,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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