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탓?(삼상 1:12-18 ; 히 10:19-25) 2015.11.15 | 목회실 | 2015-1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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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매우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즐기며 누릴 혜택이 많이 주어졌습니다. 1) 뼈대있는 가문에 시집을 갔습니다. 삼상 1:1에 엘가나의 조상 4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상들의 이름을 이렇게 길게 기록하는 것은 그 조상들이 자랑스럽다는 뜻입니다. 2)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삼상 1:4-8) 3) 먹고 살 걱정이 아주 없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일이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여성이 부러워할 만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한나에게는 위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하나도 기쁘지 않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삼상 1:2) 이런 뜻에서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싸워야 할 대상과 사랑해야 할 대상을 제대로 골라야 합니다. 싸워야 할 대상과는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하고, 내가 싸우지 말아야 할 대상과는 끝까지 사랑하거나 최소한 평화공존해야 합니다. 한나는 싸움의 대상을 잘못 판단하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니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생활이 흐트러지는 것도 당연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나는 성소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세워진 거룩한 곳입니다. 이 성전에서 기도드리는 동안에 사람은 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을 찾게 됩니다. (히 10:19-20) 이제 한나가 드리는 기도의 중심은 브닌나도 아니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영혼의 내적인 싸움이 중심이었습니다. 13절은 한나가 기도드리는 자세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 히브리성경은 이것을 ‘그때 한나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말하였기 때문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15절에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기 전에 한나의 마음을 무엇이 빼앗았습니까? 자기 환경이었습니다. 자기 주변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하자 그것들이 그 마음을 훔쳤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기 전까지 한나의 대적자는 누구였습니까? 자신이 고통당하는 원인이 누구탓이라고 생각하였습니까? 브닌나였습니다. 그녀만 없으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만 주셨다면 이런 상처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를 적대자로, 하나님을 원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음 중심으로 기도드리던 한나는 이제야 올바른 자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음이 슬픈 자라는 자아의식을 ‘나의 주의 영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하게 깨닫고 보니 마음의 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던 마음을 평강과 은혜의 하나님께로 돌리고 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주체할 수 없는 평안이 그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삼상1: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습니까? 무엇과 싸우고 있습니까? 여기서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누구 탓이라고,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싸워야 할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싸우는 것입니다. 다툼과 갈등, 눈물과 아픔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현실이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0:23-24 말씀대로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다” 보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과 몸과 생활을 지키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것이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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