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으신 뜻을 알고자 (사무엘상 3:7-11, 누가복음 2:25-33) | 운영자 | 2023-05-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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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특징 중 하나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큰소리치더라도, 자기 인생의 미래를 알지 못하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모르는 것이 인간인 것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매다는 사람들을 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사무엘입니다. 그 나이는 12살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는 네 차례나 거듭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제사장 엘리에게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런 엘리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삼상 3:2)
사람의 눈은 어떤 경우에 어두워집니까? 나이가 많아질 때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죄와 타협할 때 영혼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무사안일에 빠질 때 정신적인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종교적 형식과 의식이라는 타성에 젖을 때 영적인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근심과 염려에 절었을 때 신령한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눈코뜰새 없이 바쁠 때 감성과 정서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소견과 고집이 강할 때 이성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눈이 어두워졌다는 말은 그냥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것보다는 정신적·영적 감각이 무뎌진 것을 가리킬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예수님의 두 제자도 한 때 그랬습니다.(눅 24:16) 초대교회 일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랬습니다.(계 3:17)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혹시 엘리 제사장처럼 영안이 어두워지거나, 어린 사무엘처럼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영안이 어두워지고 영적인 귀가 막히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드렸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받아들여 매일 매일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엡 1:17-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는 엘리 제사장과 소년 사무엘이 살던 시대와 다릅니까? 우리 마음은 엘리 제사장과 소년 사무엘이 살던 시대 사람들의 마음과 다릅니까? 만에 하나 다르지 않다면, 사무엘이 누운 자리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우리 눈과 귀,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누우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자기 처소’ 곧 자기 생각, 자기 처지, 자기 주장이 주인되는 자리에 누웠던 제사장 엘리 대신에, 하나님의 등불이 켜진 자리,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는 자리에 누운 사무엘처럼 되게 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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