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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임마누엘 (이사야서 7:10-14, 마태복음 1:22-23) 운영자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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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인 지금 우리에게는 못할 게 없는 듯이 보입니다. 옛날에 하나님께만 기대할 수 있었던 것들을 지금은 사람이 웬만큼 다 합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이용하고,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진 집에 삽니다.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합니다. 의사들은 웬만한 병을 다 고칩니다. 이렇게 스스로 신적 능력을 보이고 있으니 임마누엘 신앙은 실감이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임마누엘을 종교적인 장식물 정도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던 우리가 코로나19를 만났습니다. 과학도 교회도 그 앞에서 허덕허덕합니다. 우리가 가졌다고 뽐내던 것들이 허상으로 되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앗시리아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하고 큰 제국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팽창정책을 폈습니다. 그 침략을 막으려고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주도하여 주변 5개 나라가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남 유다도 자기들 편에 끌어 들이려 했으나 유다는 그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이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동맹해서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된 뒤 아람과 북 이스라엘 동맹군은 두 차례나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이사야 7장은 바로 그 2차 침공 때 이야기입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우심 대신에 외국의 도움에 의존했습니다. 이 결정은 고양이를 쫓고자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고생길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가진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셨습니다.(7:14)

 

마태복음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기 예수님에게 적용했습니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처음과 끝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는 세상과 사람을 끝까지 품어내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성탄의 신비는 임마누엘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i) 임마누엘은 수많은 편차를 지닌 사람들을 다 포괄·포용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뜨게 합니다.

ii) 임마누엘은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향해 눈뜨게 합니다.

iii) 임마누엘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을 갖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아하스 왕처럼 의심하고 헤롯 왕처럼 악한 행위를 하더라도, 예수님은 그 어두운 죄악의 장벽을 뚫고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길과 목표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천사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에게 당시 상상할 수도 없는 최고의 칭호를 붙여 불렀습니다.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1:32), ‘거룩한 분’,‘하나님의 아들’,‘구주’,‘사람들에게 평화!’ 이 이름 그대로 예수님은 다양한 장애물을 봉착한 우리, 이런 저런 죄악에 빠진 우리를 구해내시고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비록 당장은 어렵더라도, 비록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임마누엘 주님을 영접하며 그 말씀을 든든히 붙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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