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한 마리(?)(에스겔서 34:15-16, 누가복음 15:3-7) | 운영자 | 2021-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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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숫자를 헤아려보니 99마리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세어보아도 역시 한 마리가 모자랐습니다.
목자는 지금 양을 잃어버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성격과 행실에도 관심 없습니다. 목자의 관심은 오직 하나, 그 생명을 구하는 일뿐입니다. 목자는 그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목자는 그 한 마리 양이 들판 어느 곳에 홀로 떨어져 헤맨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양 99마리를 비교적 안전한 곳에 두고, 그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로써 잃어버린 그 한 마리 양이 다른 99마리 양의 상황을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은 목자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들판에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불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못난 것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맥 놓고 기다려야해, 그까짓 한 마리 때문에’라고 수군거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보통 양들은 잃고 헤매는 양과의 동료의식보다는 이렇게 차가워질 수도 있습니다.
목자는 그러는 사이 온 들판을 뒤지고 다닙니다. 목자는 양을 숫자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양 무리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름과 표정이 있는 생명체입니다. 목자에게는 그 양의 성장과정이 그대로 자신의 세월과 이어져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 각자를 그 존재 자체로 대우합니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와 한 마리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마리 자체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일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그 한 마리가 겪고 있는 고통스러울 상황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침내 목자는 잃어버렸던 그 양을 찾아 돌아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머지 양 아흔 아홉 마리 가운데, 만일 현명한 양이 있다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 만일 내가 저런 위기에 처한다면 목자가 반드시 나를 구해 오겠구나.’라는 깨달음입니다. 이리하여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인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구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목자가 양 백 마리 모두를 향해 최선을 다해 지켜준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은 목자는 자신이 지치고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양을 찾았다는 사실, 무사하다는 사실, 이제는 안전하다는 현실에 즐거워합니다. 그는 자기가 느끼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눅 1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누군가가 봉사하고 희생하고 참아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새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혹시 어려운 지경에 다시 빠지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손길이 미칠 것을 믿을 것이며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는 한 사람, 우리라는 공동체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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