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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교회를 세우신다(민수기 11:24-29, 고린도전서 14:8-12) 운영자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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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에 있었던 방언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 말씀되고 있는 방언은 다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입니다. 방언하는 사람 자신은 깊은 영적 체험을 하고 기쁨을 얻게 되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영적 체험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예언은 다릅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는 하나님과 교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말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은 영적 은사를 말할 때 예언에 관해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상담을 하거나 남의 어려움을 들을 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또한 예언의 말씀을 기대하고 있으면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느끼게 하시고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44-5절에 집 짓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말은 오이코도메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에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라는 낱말이 중심에 있습니다. 이것은 집 또는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덕을 세운다는 것은 같이 살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때 성경의 관심은 누구와 함께 살 집이냐에 쏠려 있습니다. 이런 관심아래 성경이 주목하는 은사가 바로 예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43절은 예언의 기능을 3가지로 알려줍니다. 1) 덕을 세우는 것 2) 권면하는 것 3) 위로하는 것

 

예언이 이런 것이기에 그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을 줍니다. 특히 예언은 말하는 사람인 자기보다 남을 더 유익하게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경은 방언보다는 예언을 사모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언이나 방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은사입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1)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가(고전 12:7) 2) 사람 사이에 덕을 세우는가(고전 14:3-5)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말해 성령의 은사는 그 자체로 보다는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서 존재가치가 정해집니다. 곧 그것이 성도(교회 공동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6-13),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14-19), 더 나아가 아직 신앙공동체에 들어오지 않은 외부인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20-25)가 그 존재의미를 발휘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14장은 성령님의 활동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이어받아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덕과 격려와 위로로 든든해집니다.

 

이런 뜻에서 신앙생활을 하되, 덕 있게 하는 사람은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힘(용기)를 불어넣는 사람,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 교회에 유익한 것을 우선으로 하기에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뒤로 하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성령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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