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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르리이까?(사사기 13:8-12, 히브리서 12:2-3) 운영자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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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자녀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합니다.(127:3) 오늘같은 어린이 주일 그리고 수도사랑의학교 헌신예배를 드리는 날에 우리는 이런 사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비중있게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사사기 13장에 있는 부모의 물음(기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삼손의 부모에게는 결혼한 뒤 오랫동안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주었습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5, 7) 이제 그 부모는 자녀의 탄생과 양육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그들에게는 큰 기쁨인 동시에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에 마노아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8)

 

이 얼마나 바람직한 기도입니까!!! 이 구절에서 그리스어번역인 칠십인역은 가르치다는 말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켜 깨닫다’(συνβιβασάτω)로 옮겼습니다.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자가 두 번째로 자기 아내에게 나타났을 때 마노아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아기가 하나님의 선물이자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을 이루어나갈 사람이라는 믿음에 따라 자녀를 키우고자 하는 모든 부모의 물음을 대변합니다.

 

물론 이같은 물음은 부모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든 교사들에게 적용되는 물음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우리 교회와 학교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다 내 자녀요, 우리 자녀라는 의식으로 기도드리는 우리 각 사람의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하나는 아이들 각각이 지닌 고유한 개성과 특성과 생활의 자리를 배려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부모나 교사의 야망이 아이들을 짓눌러서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식을 양육하는 나는 자녀의 요구(욕구)에 얼마만큼 끌려 다니는 사람인가라는 점입니다.

 

오늘 수도사랑의학교 헌신예배를 드리며, 이 학교의 교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가르침과 양육의 효과가 금방 금방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피조물입니다. 어느 영역에서는 남들보다 좀 나은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남들보다 덜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가 다 불완전한 존재이라도 우리 속에는 기도드리는 영혼이 있습니다. 자녀와 학생을 양육하면서 우리는 마노아처럼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가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살아 있습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함께 이루어나가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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