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 부르는 밝은 노래 (렘 31:10-14; 벧전 2:20-25) | 운영자 | 2018-03-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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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 끝장이다” 라며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가 그랬습니다. 나라는 망해 가고, 개인과 사회도 망가지는데 그 일을 돌이킬 능력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에게 회복을 향한 희망을 주셨습니다.(렘 29:11) 본문은 그들에게 주어질 회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1. 생명 회복의 희망(10-11절) 생명회복의 약속은 네 가지 낱말로 전해집니다: 모으다, 지키다, 구원하다, 속량하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이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었으니, 그 자괴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차라리 죽는 편이 사는 것보다 더 낫겠다’는 망측한 생각이 순간순간 고개를 쳐드는 현실에 살았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자리에 내몰린 그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 위로하고 격려하며, 미래를 위한 소망을 키워가게 하셨습니다.(렘 29:11) 2. 관계회복의 희망(12, 14절) 관계회복을 나타내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찬송을 부르다, 기뻐하다, 기력을 잃지 않다, 흡족하다, 만족하다. 성도는 평생 하나님과 맺어온 관계는 아무리 경천동지할 일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며 믿음을 지킵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도 그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이런 것 또한 지나갔다’는 경험을 생각나게 하시고, ‘지금 겪는 이 일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분께서 체포되어 재판받으며 당한 모욕과 수치를 머리에 그려봅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에 주님 십자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벧전 2:34b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하십니다. 3. 정서와 감정 회복의 희망(13절) 정서와 감정 회복은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다. 위로하다’는 말로 전해졌습니다. 사람의 정서가 메마르면, 웃을 일에서도 웃음이 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팍팍해지면 기뻐할 일에서도 흥이 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다 웃는데도 저 홀로 웃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들이 다 흥겨워하는 때에도 저 혼자 씁쓸하게 돌아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정서가 메마르고 감정이 사그러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웃음을 되찾아 주시는 분입니다. 흥과 재미를 되찾게 하시는 분입니다.(렘 31:13). 덴마크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진정한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상실’이라 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에 절망하며 죽어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미래를 기대하며 설계하는 일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환경이라도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려는 몸부림은 소망을 안고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망과 절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 하나님은 밝은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릅시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 가사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인생에 드리운 어둠의 장막을 거두어주시고, 밝은 햇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고, 우리 민족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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