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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느냐?(렘 2:5-8 ; 마 20:17-23) 운영자 201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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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doch.org/bbs/bbsView/135/5240161

1960~80년대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에 가 인생의 목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코리안 드림이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자기 인생의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합니다. 이런 것에 비추어 보면 출애굽기 19장을 가나안 드림(Canaan Dream)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과 달라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과 진리와 정의와 아름다움을 이루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의 '가나안 드림'(Canaan Dream)은 그 땅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19:6)

 

예레미야 2장에는 이런 꿈이 깨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보니 그들이 믿는 신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갈망하는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같은 신들은 물질적 번영에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개돼지처럼 살아도 가나안 신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기들에게 제물만 풍성하게 바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악하게 살아도, 아무리 부도덕하게 살아도, 아무리 제멋대로 행동해도 그 신들은 눈을 질끈 감고 복을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풍요의 신, 번영의 신, 쾌락의 신인 가나안의 우상을 따르는 것이 사랑과 평화와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쓸모 있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옛날 공자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편히 사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무익하고 허무한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크게 여기는 우리는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육체적인 만족을 영적인 만족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은 가나안 풍조에 물든 이스라엘과 비슷해 보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평화보다는 앗시리아에 의존하여 그 군사력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현실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두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식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구하려고 예수께 나왔습니다. 이점에서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두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려고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들의 출세, 성공,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들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것이 무엇이 허물이며,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지금 내 아들딸들이 좋은 곳에 시집장가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마음의 소원을 아뢰러 여기 나왔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원해서 그것을 구하려고 하나님 존전에 나온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려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모든 영광과 권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께 속했다고 고백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려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복받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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