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의 차이가 곧 믿음의 차이(출 6:2-8 ; 막 14:3-9) | 운영자 | 2017-0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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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수님은 베다니에 사는 문둥병자 시몬의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집에 가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그 안에 들어있던 순수한 나드 향유를 몽땅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바라드린 순수한 나드 향유를 값으로 치면 300데나리온입니다. 이것은 직장인의 일년치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엄청나게 비싼 향유입니다. 여인이 가지고 온 향유 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식물을 원료로 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매우 값비싼 향유입니다. 이에 사람들이 화를 내며 그 여인을 책망했습니다.(막 14:4-5) 그러자 예수님이 이 여인을 두둔하며 말씀하셨습니다.(막 14:8) 향유 옥합을 깨뜨려 300데나리온짜리 향유를 예수님에게 발라드린 이 일을 놓고 반응이 이렇게 엇갈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쪽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 그 자체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밖으로 드러난 행동만 볼 뿐 그의 기분이나 진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진심이나 느낌을 염두에 두지 않다보니 자기 생각이 기준이 되고, 자기 판단이 최고였습니다. 상대방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고 상대방은 엉뚱한 사람이고 상대방은 자기에게 꾸지람을 들어야할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그 행동에 이해가 갔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주변 사람들이 다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젓는 사람이 잇는데, 우연히 그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정을 들어보니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받아주었던 경험 말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심정을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여인의 진심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들 사이에 오간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려면 이 이야기 앞뒤에 나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막 14:3-9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그 날 저녁,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저녁이 예수님에게는 폭풍우와 천둥번개를 예고하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시각이었습니다. 막 14:1-2을 보십시오. 그 당시 가장 큰 힘을 행사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모의하던 밤이었습니다. 이 일 직후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막 14:10-11을 보십시오. 열 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 돈을 넘겨받았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들이 일어나는 바로 그 밤에 인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이름 없는 여인이 예수님의 이 처지와 심정을 알아준 것입니다. 이 일을 일으킨 주인공의 이야기는 예수님 말씀대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막 14:9)하게 되었습니다.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옥합을 깨뜨린 이 여인의 일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룟 유다는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그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사건에도 전혀 감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감 없이 행동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과 같이 어렵고 혼탁한 시대에 주어지는 하나님 말씀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성경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적용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아름다운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말씀에 입각하여 버릴 것을 버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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