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광야에서 이루어진 따뜻한 만남(출 3:4-8 ; 고후 4:6-10) | 운영자 | 2017-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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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감옥이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행 16장) 감옥은 가장 척박하고 살벌한 장소였지만, 거기서도 하나님과 하니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는 자리로 변한 것입니다. 이 경험을 살려서 사도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비록 질그릇같이 연약해 보여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거룩한 보물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우리 주변 환경과 생활 현장에 광야의 찬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듯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거기에 싸이지 않게 따스한 성령이 우리를 찾아와 감싸주십니다. 비록 우리 인생에 가슴 답답한 일들이 닥쳐와도 ‘나는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낙심하는 대신에 길을 찾아내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비록 우리 인생에 환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십니다. 비록 우리 인생이 가끔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정하신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망하지 않고 재기하게 도와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는 그 어떤 곳이든 다 거룩한 자리요, 희망의 자리요, 용기의 자리입니다. 죽어가던 인생이 되살아나는 곳이요, 쓰러지고 넘어지던 인생이 재기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도망 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어느날 호렙산 광야 뒤편에서 양을 돌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나무가 타 재가 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모세는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궁금하여 그 나무에게도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가 선 그곳, 그 광야, 찬바람 부는 곳, 외롭고 쓸쓸한 자리를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떨기나무는 아카시아과에 속하는 가시나무입니다. 찌르는 가시로 무장한 그 나무에 하나님은 불꽃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어온 인생에게 따스한 불꽃으로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어쩌면 모세는 그 떨기나무(가시나무)에서 자기 인생의 자화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찌르고 찔리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찌르는 가시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갈대상자 속에 든 채 강물에 띄워질 때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도망칠 때에도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지내며 비록 생명의 위협을 직접 느끼지 않았더라도 그는 허전하고 쓸쓸한 가슴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가시덤불을 보며 모세는 기구한 자신의 자아상을 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찌르고 찔리는 그 자리를 거룩한 장소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2017년이라는 시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시간이기를 소망합니다. 2017년에 우리가 살아 숨쉬며 활동하는 자리에 성령님께서 따스한 불꽃으로 나타나 외로움도 태어버리고 가시 같은 날카로움도 태워버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거룩한 자리로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찬바람 부는 광야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셔서 시시때때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고, 시시때때로 따스한 만남들이 있게 하시고, 가슴 훈훈해지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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