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이 세상 사람들(사 66:18-23; 마 3:13-17) | 운영자 | 2017-0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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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는 이사야서를 제5복음서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성경의 복음서라고 불려지는 사 9:6-7은 이사야서 66장 말씀과 구체적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난지 팔일째 되던 날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세계교회는 매년 1월 1일을 예수님 할레기념일로 지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이 할례는 오늘날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가 할례받은 날부터 혹은 그 이틀 뒤인 1월 3일부터 아기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세계교회는 이 날을 예수님 이름지은 날로 기념합니다. 마태복음 3장에는 예수님이 세례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유아세례, 견신례 세례를 생각해 봅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우리 신분을 보증하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어도 우리 신분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각자 주어진 이름을 생각해 봅니다. 서양 사람들은 대체로 별다른 뜻 없이 부르기 쉽게 이름을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특별한 소망을 담아서 짓습니다. 이것이 서양에는 없는 작명소라는 것이 우리 나라에만 있는 이유입니다. 누가 우리 이름을 지었든지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성심성의껏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와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의 신분을 정해주시고 우리 이름을 '내가 사랑하는 자,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지어주시는 사건입니다. 이사야 66장 22절입니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내 앞에 있으리라’ 예배를 드릴 때 이런 사실이 확실해 집니다.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하며 세상에 살다보면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것, 장차 사라지고 말 것에 더 마음이 쏠립니다.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세속적인 이익에 정신을 빼앗겨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사 66;23) 예배는 생각을 바꾸는 자리입니다. 마음 바꾸어 먹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선택이 아닙니다. 시간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고, 피곤하면 안하고, 힘들면 빠져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예배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큰 문제로 골치가 아프고 피곤해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 그리고 문제해결을 받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닥쳐온 문제로 힘들고 지치면 평소보다 오히려 더 열심히 교회에 와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을 모시고 나와 예배드려야 하고, 피곤하여 도저히 못 나오겠다 싶을 때에도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찾는 자에게 예수님은 쉼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지으신 새하늘과 새땅에 사는 백성입니다. 우리 이름과 우리 자손의 이름이 이미 새하늘과 새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자리는 그 어디나 따뜻한 곳이 되고, 머물고 싶은 자리가 되고 포근한 사랑이 넘치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교회는 따스한 교회, 머물고 싶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새하늘과 새 땅에 사는 여러분의 2017년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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