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의 잔치(사 25:6-11 ; 눅 1:67-79) 16.12.4 | 운영자 | 2016-1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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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잔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젖을 떼는 날 기뻐하며 잔치하였던 것에서 시작하여 천국에 간 하나님의 백성이 어린 양의 잔치에 참여하여 찬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요한계시록)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말씀도 아들을 낳고 할례를 베푸는 기쁜 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잔치를 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과학 특히 의학의 발달은 생명을 살리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다만 그것으로도 죽음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사 25:8) 이 말씀은 사망을 영원히 죽이겠다고 합니다. 사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말씀입니다. 죽음이 더 이상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죽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이라 그런 지,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에게‘이 정도면 살만큼 살았지’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또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아’라고 말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거두는 때에는 평생동안 느껴 본 불안과 공포를 다 모아 놓은 것보다 더 큰 절망과 고통과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도 많은 근심걱정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우리 앞에 가장 큰 근심걱정거리가 남이 있다니.... 이제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셔서 사망을 영원히 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죽음에게 사망선고를 내리셨습니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망에 이르는 원인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죽음의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 죄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사망의 문제는 곧 죄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니라’(마 1:21)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멸망을 당하였고,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은혜로 주어졌습니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 생명을 얻은 것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잔치입니다. 대림절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 온 몸으로 맞아들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 생명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어라고 고백합니까? 사 25:9입니다.‘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대림절에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에 감사드리겠습니까? 가장 먼저 죽음을 영원히 멸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고 나면 인생의 다른 문제들은 제아무리 큰 것처럼 보여도 결코 큰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축하하며 잔치를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 가슴을 옥죄는 인생살이의 일들조차도‘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 생명을 축하하고 기뻐하고 즐기며 살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도 원망하는 대신에 포용할 상대로 보입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도 저주와 손가락질 대신에 중보기도 드릴 대상으로 보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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