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어울림의 폭으로 드러난다(사 1:16-20 ; 히 11:1-4) | 김건호 | 2016-08-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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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본다’는 뜻입니다. 히 11장에 나오는 15명은 눈으로 보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으로 보기 전에 믿음으로 보았고, 믿음의 길을 선택 했습니다. 사실 보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우리를 위해 몇 가지‘증거(證據)’를 보여 주셨습니다.(히 11:1-5, 13, 39, 12:1)‘증거’는 ‘믿음’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증거를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증거들을 주십니까? 첫째, 선진들의 삶, 발자취입니다(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둘째,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입니다. 자연만물, 온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세 번째,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證人)들입니다(히 12:1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증거하는 증인들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초청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배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요 회개하며 찾아오는 죄인과 어울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비난당한 항목 가운데 하나가 ‘죄인들의 친구’라는 것입니다.(마 11:19; 눅 7:34) 하나님과 우리의 어울림은 예배드림으로 나타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어울리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어울림은 예배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합니다. 인생살이에서 겪는 기쁨과 즐거움, 괴로움과 슬픔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어울리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인생에게 다가오는 쓰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어울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절박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어울리는 믿음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이런 일들에서 우리 마음과 발걸음이 성경과 멀어지거나 교회와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하나님과 어울리는 폭이 우리 믿음의 폭입니다. 하나님과 어울리는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기쁘든지 슬프든지 즐겁든지 괴롭든지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간직하며 그 소망의 실현을 향해 나아갑니다. 둘째로 범사에 감사합니다. 감사할 만한 일은 한 가지뿐이고 감사하지 못한 것은 열두 가지라도 그 한 가지 때문에 감사드리며 밝은 표정 맑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셋째로 인간관계에‘정’이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완벽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어울리는 사람은 눈에 차지 않는 사람에게도 완전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웃음과 정을 마음에 품고 대합니다. 넷째로 정직하고자 노력합니다. 살다보니 정직하지 못하게 행동할 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어울리는 사람은 이내 회개하면서 정직성을 되찾습니다. 정직성이라는 문제로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숨결까지도 느끼시는 하나님과 어울리는데 힘쓰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숨쉬기와 생각하기까지 하나님과 공유하는 정도로까지 믿음의 폭이 커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을 안고 여기 함께 예배드리는 온갖 좋은 것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우리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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