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고프다(암 8:9-12 ; 눅10:38-42) 16.7.17 | 운영자 | 2016-07-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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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는 천성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입니다. 마을로 들어오신 예수님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셔 들인 것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기 혼자 알아서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한 것도 마르다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런 그녀가 화를 내며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40절) 아마 예수님이라면 자기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습니다.(41-42절)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밥을 먹을 때 밥에,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이런 저런 걱정을 많이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게 왜 잘 되지 않을까요? 든든하지 못한 우리 마음과 믿음이 그렇게 만듭니다. 사람 마음이 갈대와 같다고 합니다. 마르다도 처음부터 화내지 않았습니다.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무엇을 대접할까 궁리하며 부엌을 드나들 때만 해도 그녀 마음은 천국이었을 것입니다. 아주 잘 하려는 마음이 평정을 깨뜨립니다. 잘해서 칭찬 들어야지 하는데 빼앗기다보니 늘 하던 음식인데도 이상하게 간이 안 맞습니다. 그런데다가 마리아는 자기를 거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요. 천국이었던 마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한 마디 더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리아에게도 예수님께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픈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녀는 그것보다 더 좋은 몫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그 말씀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 듣는 것보다 마르다처럼 봉사하기가 더 쉬울지 모릅니다. 비록 오늘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였습니다. 말씀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하지 않고 보다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무게를 두는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말씀에 집중할 때만 영성이 깊어지고, 그럴 때 우리에게 집중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대체로 예수님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자칫하면 절제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이 성도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순간입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원망할 때 그 대상은 그 사람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원망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를 비난하는 것이므로 결국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마르다와 마르다가 다시 등장합니다. 마르다는 여기서도 여전히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합니다. 타고난 천성은 그대로이지만 말씀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말씀과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찾아오시자 마르다는 동네 어귀까지 달려 나가 맞이합니다. 게다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라는 유명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자신의 천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태도와 활동에서는 부드럽고 온화하고 유익을 끼치는 모습 –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이 고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복음의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할 것이냐 자기 기분대로 할 것이냐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의 마르다는 어느새 그 숙제를 다 풀고 배려심 깊고 신앙심 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마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각 사람은 어떠합니까? 이번 주간도 “(복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비추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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