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정(왕하 5:9-14 ; 눅10:1-6) 16.7.10 | 운영자 | 2016-07-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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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은 어떤 인물을 다섯 가지로 소개합니다 : 이름(나아만) 직위(군대장관) 평판(크고 존경스러운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신 자) 이 네 가지만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성경에는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그의 건강상태(나병환자)입니다. 그 한 가지가 앞서 나온 네 가지를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나아만은 겉으로는 화려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빛나는 갑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속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안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사는 히브리 소녀가 감히 나섰습니다.(3절) 이에 따라 이스라엘로 온 나아만은 예언자 엘리사의 말씀에 따라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소녀는 이름도 없고, 힘도 없고, 신분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무(四無)인생이었습니다. 성경은 나아만을 큰 인물이라고 하면서 이 소녀에 대해서는 작은(카탄) 사람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녀는 나아만의 속사정(실체)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나니 불쌍한 마음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가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하나님 마음을 품고 대하면 그 사람도 우리를 우러러 볼 것입니다. 비록 하녀일지라도, 계집종일지라도, 어린 소녀일지라도 비록 그가 낮은 자리에 있어도, 주인은 그녀를 하늘이 보낸 천사로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흔히 ‘그러나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 한 사람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고보니 ... 한 사람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그러나’란 말 앞에 붙는 내용보다는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앞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붙어 있으나 그 뒤에 부정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그런 사람입니다. 앞에 붙은 네 가지는 다 좋은 것인데 ‘그러나’ 뒤에 붙어 있는 마지막 하나 때문에 그의 인생이 무너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에는 부정적인 내용이지만 그 뒤가 긍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만 부인의 몸종이자 히브리인 소녀가 그런 사람입니다. 앞에 붙은 두 가지는 다 좋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 소녀도 자기가 태어난 부모님에게 사랑받던 딸이었던 사람이 사로잡혀 와 나아만의 아내의 몸종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러나’ 뒤에 붙어 있는 믿음에서 나오는 그녀의 말 한마디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밝고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우리 집에도 직장에도 학교에도 교회에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영화는 누리고 있지만 육체가 후패하여 가는 고달픔, 심령이 낡아지는 허무함, 영혼이 병들어 죽음으로 끌려가는 나아만이 있습니다. 나아만은 나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아만을 고쳐야 민족이 살고, 국가가 살고, 사회가 삽니다. 무엇으로 고칠 수 있습니까? 오직 복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소녀가 나아만에게 전하였던 바로 그 말(3절)이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할 소식입니다. 인생의 이런 속사정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눅 10:5) 그리고 복음의 능력으로 아파하는 사람을 보듬고 감싸게 해 주십니다. 나아만을 고치듯이 인간의 썩고 병든 심령도 정신도 마음도 육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게 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복음의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적인 마음을 먹기를 원하며 간구하면, 비록 믿음이 적은 자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는 나아만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주어서 저들을 살려놓는 생명의 은인, 하늘이 파송한 천사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성령님께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축복의 통로로 사는 영적인 큰 사람으로 세워지고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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