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게 하시는 성령님, 오시옵소서(창 11:1-9 ; 요 14:12-18) | 운영자 | 2016-05-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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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사람들은 인간상실, 인격상실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무엇입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단절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우리 생활이 답답하고 짜증나며, 세상사는 맛을 빼앗아갑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 사이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은 있습니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여자와 남자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북사람과 이남사람 사이에 말이 안통하며, 영남 사람과 호남 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합니다. 국민과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도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기업가와 근로자 사이에,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서도 조차 이런 일이 없지 않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신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위로와 밝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귀에 들려지는 언어를 마음의 문을 열고 듣게 하십니다. 막혀진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주십니다. 이런 뜻에서 성령님의 역사는 바로 인간회복의 복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중심적 사고와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배려할 줄 알게 하십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진실에 불편해 하지 않게 됩니다. 이로써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말이 쉽게 통하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렇게 말이 통하는 곳에서는 단지 언어소통을 넘어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이 통하는 곳은 인생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단지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함께 세우고, 인생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이런 소통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떤 때에 가능할까요? 그 대답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에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기도드리는 사람에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저는 ‘하늘’이라는 이 말을 “나 자신보다 위에” 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보다 더 우위에, 나 자신의 소유보다 풍부하게, 저 자신의 능력보다 더 우위에, 나 자신의 계획이나 일정보다 더 우위에, 나 자신의 지위나 명예보다 우위에,...이런 뜻에서 주기도문의 첫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 첫마디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누구나 다 참된 신앙인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보헤사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나이, 성, 출신지역, 학력, 직업, 경력, 취미, 가족상황, 소유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 주님, 한 믿음, 한 소망을 소유한 가족입니다. 성령의 열매 9가지,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 -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우리 스스로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령 하나님은 성령체험을 사모하는 우리 사이에‘하나님의 이 큰 일’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의 이 큰 일’을 스스로 해 나갈 힘이 없지만, 성령체험으로 우리 심령이 달구어지고, 성령체험으로 우리 인생이 단련되면, 세상 욕심, 세상 체면, 세속적인 장애물을 다 뛰어넘어,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뜨겁게 강하게 임하시어, 우리 각 사람과 수도교회에 이를 이루어주시도록 기도드려, 응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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