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출 2:1-10 ; 행 16:29-34) 2016.5.1 | 운영자 | 2016-05-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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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실라의 신앙은 한 생명, 한 가정을 구원하는 통로로 쓰였습니다. 자신은 억울한 일을 당해서도 감옥에 갇혀서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성부성자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는 의식을 지니고 행동하니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나의 신앙이, 나의 신앙생활이 누군가에게 선한 본보기가 될 수만 있다면, 교회에서 내가 하는 언행이 누군가에게 위대한 신앙을 꿈꾸는 통로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행복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태도를 봅니다. 그 하나는 감옥을 지키는 간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 일행입니다. 일상적인 일들이 진행되는 평소에는 믿음없는 사람이 더 잘 나가는 듯 보이곤 합니다. 그 일상성이 깨어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수의 발에 채웠던 족쇄가 다 풀리고 옥문이 활짝 열린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쳤으리라고 간수는 지레 짐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만들어낸 상상일뿐입니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늘과 세상일을 상황과 환경의 조건에 따라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에 비해 사도 바울일행은 어떠하였습니까? 체포되고 매맞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자신의 마음과 영혼에 자리잡으신 성령님의 역사를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지진이 나고 착고가 풀리는 일도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그 믿음을 빼앗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화내고 상심하고 두려워하는 대신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히 11:23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아기 생명을 지키고, 믿음대로 길러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갈대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우라는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출 2:3) 이렇게 하는 부모의 손을 저는 기도드리는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청을 칠하는 손은 아이가 물에 닿지 않기를 염원하는 기도 손입니다. 어버이 사랑과 소망이 담긴 기도손입니다. 비록 갈대 상자가 보잘 것 없어도 부모는 모세의 생존을 꿈꾸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아시대의 방주와 모세 시대의 갈대상자를 똑같은 낱말로 썼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노아의 방주, 모세의 갈대상자라고 다르게 번역되었는데, 히브리성경에는 방주와 상자가 똑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 아이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생존을 위협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느 것도 침범하지 못하는 구원의 방주가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세례와 유아세례는 우리 인생이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이에 우리는 김00, 이00로 이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000, 하나님의 딸 000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유아세례식도 거행합니다. 이 예식을 거행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례를 기억합니다. 거친 세상을 거친 마음으로 살지 않게 하는 구원의 방주, 살벌한 세상을 따뜻하고 여유있게 살려 하려는 구원의 방주, 요동치는 세상 현실에서도 평강과 평정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살게 하는 구원의 방주 ... 이 구원의 방주에 여러분은 이미 올라 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000, 하나님의 딸 000로 이 세상에 살아갑니다. 이 구원의 선물과 함께 생명력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한 여러분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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