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여니 마음도 열리네(요 13:31-35 ; 행 11:1-10) 16.4.24 | 운영자 | 2016-04-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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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가죽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도 피장이(갖바치)를 인간이하로 대우하였습니다. 욥바에 초청을 받아간 사도 베드로는 피장이 집에 머물렀습니다. 피장이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가 마련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잤습니다. 그가 쓰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처신입니다. 이로써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로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람 차별의 편견을 극복한 사도 베드로에게는 사람 차별하는 편견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사람이 편견 하나를 극복하였다고 해서 모든 편견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후에도 뛰어넘어야할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사도 베드로가 그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편견이나 차별의식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인도를 받을 때에 가능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각과 감정과 기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만이 편견을 이기게 해줍니다. 내 기분 내 감정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래야만 내가 만나는 혹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더불어 살게끔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사람은 가끔 말합니다.‘그거 이미 들어보았던 것이야, 내게는 말할 필요도 없어.’이런 태도는 자신의 귀도 마음도 닫혀 있다는 뜻입니다. 또 말합니다.‘한 번 말하였으면 됐지. 이제 고만해.’이런 태도 역시 자신의 귀도 마음도 닫혀 있다는 뜻입니다. 또 말합니다.‘한 두 번 했으면 돼지. 이제 고만해.’이것 역시 자신의 귀도 마음도 닫혀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난 사도 베드로의 마음과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결코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나라와 온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베드로도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너와 나,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려고 주님은 베드로의 들을 귀를 어떻게든지 열어주시려고, 마음 문을 열어주시려고 똑같은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요 13:34-35). 구약성경 중에 룻기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 룻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고국 모압과 고향을 떠나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물설고 낯설은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그녀를 본 보아스는 그녀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2)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룻에게 한 말 가운데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자’라는 말은 오늘날 누구에게 해당됩니까? 여기 앉아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자’입니다. 비록 보호의 내용과 방법과 분량을 다르더라도 그 은혜를 받고자 하는 심정을 다 똑같습니다. 은혜받으러 온 룻에게 축복의 통로가 된 보아스처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각 사람이 다 서로 서로에게 하나님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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