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에서 고백으로(요 20:19-29 ; 행 5:27-32) 2015.4.3 | 운영자 | 2016-04-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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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첫마디는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19, 21, 26절) 초대교회 시절부터 우리는 유대교가 지키던 안식일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기리며 주일을 지켜왔습니다. 이를 ‘주일성수’라고 합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성수(거룩하게)를 지키는 것이 됩니까? 세 가지 내용입니다: ① 주일예배 ② 주님의 평화를 받아들이고 유지하기(19절) ③ 부활의 기쁨을 받아들이며 유지하기(20절). 중세 초기부터 교회는 부활절 이전 40일 동안 예수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금욕과 절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40일 사이에 주일이 6-7번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절제와 금욕의 기간인 사순절에도 주일만큼은 잔치와 축제로 지냈습니다. 매 주일마다 부활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만큼 평화와 기쁨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평화와 기쁨을 지켜갈 뿐만 아니라 믿음의 형제자매의 그것, 가족의 그것도 지켜주는 것이 곧 주일성수입니다. 만일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주일성수를 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일을 삼분의 일만 성수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축하며 예배를 드린 사람은 예배 후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나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나 가정에서나 예배드린 사람의 냄새가 나야 할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느끼기에‘저 사람, 오늘 예배드린 냄새가 나네...’자녀들이 부모를 보며 ‘우리 엄마 아빠에게서는 예배드린 냄새가 나네’ 라고 느낄 수 있어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믿으라 하시며 숨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으로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숨결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시면서 성령을 영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거룩하신 영은 다시 말해 성령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숨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숨을 불어넣다는 이 말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여기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뜻의 히브리어는 구약성경 창세기 2:7과 에스겔서 37:9-10에 쓰였습니다. 누가 참다운 성령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숨결 속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숨결은 영원한 숨결이요, 진흙을 생령으로 마른 뼈를 군대로 변화시키시는 창조의 숨결이요, 전능하신 숨결입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숨결 속에 있을 때 겁쟁이가 평강의 사람이 되며, 배신자가 참 제자로 변화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데서 나타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교회 공동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예수님은 형제자매의 죄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물론 교회와 성도는 옳고 그름을 알고 실행하는 도덕과 윤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교회와 성도만이 아니라 이 세상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성령님에게 이끌리는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만일 교회와 성도가 용서하는 일을 제쳐놓은 채 다른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을 내놓아도 그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에수님의 부활을 오늘도 체험하는 공동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현장을 보지 않고서도 믿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일성수 세 가지 내용: 주일예배 참석, 평화, 기쁨. 이 세 가지를 아직 우리는 온전히 실천하는 성도, 공동체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내게는 하나님의 창조의 생기가 들어 있어, 나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기가 들어있어’라고 의식하면, 그 순간만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평화와 기쁨을 지켜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기를 안고 부활을 축하하는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생명의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고 부활하는 인생으로 축복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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