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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감사가 시작되는가?(사 50:4-9 ; 눅 22:14-23) 16.3.20 운영자 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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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doch.org/bbs/bbsView/135/5086171

다음 주일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우리는 성만찬을 거행합니다. 기독교 초기 성도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그렇다. 성만찬에서 기도와 축성을 드리면, 제단에 있는 떡은 주님의 몸이 되고 포도즙은 피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께서 어찌 이것은 내 몸이다 ...” 라고 말씀하셨겠는가? 이런 믿음에서 나온 것이 오늘날 천주교회가 말하는 화체설입니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라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성만찬의 자리에서 떡이 예수님 살이 되고 포도즙이 예수님 피가 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건 정말 미신이다. 성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놓고 기도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기념설이라고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운동을 하던 죤 칼빈은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만일 성찬식에서 기도하고 떼어준 떡이나 나누어준 포도주가 단순히 기념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영적 의미가 있느냐!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반드시!!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드리며 성찬을 거행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신다. 마귀도 물러가기도 하고, 질병이 낫기도 하며, 신비한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고, 우리가 추측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성만찬의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임하기 때문이다.”이것을 영적 임재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이 견해에 따릅니다. 성만찬을 화체설로 설명하든 기념설로 설명하든 영적 임재설로 설명하든 인간의 말로는 다 풀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사용하는 성만찬의 재료가 다릅니다. 천주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씹어먹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호스티라는 것을 만들어 입에 넣으면 저절로 녹는 재료를 사용합니다. 장로교회는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부활을 영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어지는 떡을 꼭꼭 씹어 먹습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지듯 떡이 가루가 될 때까지 씹으며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당하심을 자기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입시킵니다.

 

다음 주일 성만찬을 거행할 때, 기도드리며 떡을 떼고, 기도드리며 포도즙을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주시며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26)고 하신 것에 순종하여 떡을 나누시는 장로님 앞에서 두 손바닥을 모아서 내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진 떡을 그대로 입에까지 올려서 드시며, ‘주님, 주님께서 저를 위하여 찢기신 그 사랑이 제 인생에 적용되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잔을 드실 때에도 마시며주님, 주님께서 저를 위하여 흘리신 그 은총이 제 인생에 적용되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 형식은 매번 같은 것이라도 우리 심성에 일어나는 은혜의 내용만큼은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드리며 떡을 떼고 기도드리며 포도즙을 나눌 때, 주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셔서 우리 각 사람을 긍정적으로 신앙적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회개하는 역사도 일어나고, 지치고 병들고 상처받은 심령을 어루만져 회복시키시는 역사도 일어나고, 간절하게 드리던 기도 제목이 응답받는 역사도 일어나는 놀라운 성찬식, 축복의 성찬식, 신비의 성찬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닮아가되,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그 마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 속에 들어있는 사랑의 마음이 우리 각 사람과 가정과 교회에 적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웃음이 가득한 인생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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