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오라(사 60:1-5; 엡 3:7-12) 2015.1.14 | 김건호 | 2016-0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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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생활 70여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로 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었으며 포로생활을 끝내 마음이 후련하였습니다. 막상 예루살렘에 와 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무너진 채 그대로 남아 있었고, 유대 백성이 떠난 자리에 들어와 살던 외국인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잿빛이요, 어둠이었습니다. 이 때 예언자 이사야가 외쳤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1a). 그는 현실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어두운 시절에 한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뜻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60:2b)
예언자 이사야가 전하는 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눈에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현실을 보았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아니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현실을 그는 보았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일어나라!’ 고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어나라는 말은‘믿는 사람답게 바르게 살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바르게 되면 태도와 언어도 바르게 되고, 생각도 바르게 되고, 마침내 그 인생도 바르게 됩니다. 사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온 땅을 덮고 있을 때 하늘에서 별 하나가 유난히 밝은 빛을 내며 빛났습니다. 세 사람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빛을 따라 그들은 간 곳은 헤롯왕의 궁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세상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발걸음을 베들레헴 쪽으로 돌리자 또 다시 별이 나타나 그들이 가는 길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모신 사도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엡 3:7) 그는 자신이 세상의 작은 자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라고 인정하였습니다. 그의 능력이나 의지나 품성이 세상의 풍파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물질과 명예와 지위가 메시야 역할을 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는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다’(엡 3:12)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뒤로 하고 말씀과 믿음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곧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비록 세상의 풍조를 이겨낼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꾼이기에,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희생 시켜도 좋다고 합니다. 경제만능주의라는 빛에, 기껏해야 잠시 비추다가 꺼질 촛불 같은 빛에 빠져 있습니다. 돈의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백년지대계인 교육도 돈을 버는 수단으로 떨어졌습니다. 대학교에도 인간의 정서와 소양과 상상력을 키우는 인문학과를 없애고 돈벌이가 되는 학과만 살려두겠다고 합니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로 오르고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게 바로 영광의 빛을 비추는 걸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어두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자기 자신은 세상과 사람들 앞에서 여리고 약하지만, 임마누엘 하나님 안에 머물고 말씀 안에 머물 때, 하나님 영광의 빛은 사람에게 비추어지고 반사됩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아침 이슬처럼 곧 사라지지만 여호와의 영광만은 영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손에 잡히는 풍요, 세상을 덮은 어두움에 노예가 되는 대신에 하나님 영광을 보며 일어나 빛을 발하기 원하는 여러분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축복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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