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기쁨(한국일보 1996. 7.8 천자춘추에 썼던 글입니다) | 권오성 | 2005-05-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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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을 정리하다가 잊고 살았던 글을 몇 편 발견했습니다. 당분간 일주일에 하나씩 싣고자 합니다./// 옆의 사진은 몇 년동안 거실에 뒹굴던 볼품없던 선인장에 그저 무심하게 물만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핀 거실의 둥근 선인장 꽃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며칠 후에 남은 3개의 봉우리가 다 꽃이 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T.V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애국가 나오고 방송이 끝나야 끄게 된다. 그런데 서울에도 아직 난시청지역이 있는지 작년 7월 이사를 한 뒤 T.V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선방송을 연결해야 시청이 가능하다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예 T.V 수상기를 거실 한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별안간 방송을 보지 못하게 되자 저녁시간이 되면 뭔가 허전하기만 했다. 오죽하면 중3짜리 아들은 ´아버지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면서 방송 하나 나오도록 못하느냐´고 은근히 핀잔을 주며 압력을 가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10개월쯤 지나니 놀랍게도 이제 우리 식구들이 T.V 중독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방송사나 광고주의 일방통행식 메시지를 자동적으로 수용했지만 이제는 내 필요에 따라 시청 여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자유란 스스로 선택권한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제 나는 비로소 T.V로부터 자유인이 된 것이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권한´을 정치군인들 손에 더 이상 맡기지 않고 국민들 스스로 그 권한을 갖겠다고 9년 전 6월항쟁 때 전국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 선택권을 박탈당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권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최근 점점 많아지고 있다. 농촌과 노동현장, 교육과 문화 등등 여러 분야에서 이같은 자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국의 분단 대신에 평화와 통일을 선택하겠다고 결심한 목사와 신부, 스님과 교무들이 하나가 되어 6월 25일부터 지난 4일까지 장맛비 속에서 국토 순례를 했다. 처음에는 ´옛것´의 마력 때문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자유인으로 살기 시작하는 첫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는 한 우리 역사 구석구석에 전에 모르고 지냈던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도 부지런을 떨어서 유선방송 연결을 하려고 한다. 그래야 스스로 선택에 따라 인생을 사는 자유인의 기쁨을 알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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