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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QT(1.31-2.4) 김건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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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시 9:18)
 
“But the needy will not always be forgotten, nor the hope of the afflicted ever perish.”(Psalms 9:18)
 
믿음의 중심이 선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가난한 사람 또는 의인이라 부릅니다. 그 가난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과 그 정신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인해 그 사람은 실제 생활에서 겪는 손해도 감수합니다. 가난이란 사람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다보니 때로는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의 경건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정신적·영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람과 시대는 불행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무슨 낙이 있고, 무슨 감사가 있으랴’는 말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때에 경건한 사람은 영원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2.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off?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imes of trouble?”(Psalms 10:1) 


시인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약한 자들을 해치는 악인이 오히려 잘 나갑니다(시 10:2∼11).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라고 노래하던 그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하나님이 숨어계신 현실에 당황했습니다. 이사야도 그랬습니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어려울수록 사람은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나 미신적인 주술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시인의 탄원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자 열심히 찾고 있다는 증거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시입니다. 이런 고백으로 그는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2.2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In his pride the wicked does not seek him; in all his thoughts there is no room for God.”(Psalms 10:4)
 
무신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합니다. 이론적 무신론이라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그 능력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실상의 무신론이라 부릅니다.  


기독교인 중에 후자에 해당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배를 드리고 그 입술로 기도와 찬양도 드립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그의 계획과 실행에 하나님의 자리는 아주 작거나 없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생각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앞서갑니다. 우리는 ‘주님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진지하게 물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3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시 10:6)
 
“He says to himself, ‘Nothing will shake me; I’ll always be happy and never have trouble.’”(Psalms 10:6)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을 뒤흔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위와 같이 말하는 악인(교만한 자)은 어쩌면 흔들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행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아성을 더 견고하게 쌓고자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사 54:10)는 말씀을 믿는 사람은 흔들리는 것에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크게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이내 평정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4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시 10:11)
 
“He says to himself, ‘God has forgotten; he covers his face and never sees.’”(Psalms 10:11)
 
  


오늘 말씀에서는 교만한 자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은 자신에게는 물론 자신에게 당하는 사람들(약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 의미뿐 아니라 거룩한 영광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시편 10편은 이런 발상이 사람을 얼마나 악하고 무모하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마음과 생활에서 하나님을 몰아낸 사람은 부끄러운 짓도 아예 드러내놓고 합니다. 기독교인 중에 하나님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떠난 사람은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면서도 신앙에 걸맞지 않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자신의 뜻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포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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