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Psalms 8:1)
하나님은 피조물을 보며 감탄하시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여기 쓰인 ‘아름답다’는 말은 ‘위력있다, 강력하다, 영광스럽다, 돋보이다’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존귀하심을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혼이 맑아지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요즘 아름다운 것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편, 이해관계’에 매이면 사람의 눈과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귀하거나 가치 있는 것을 보아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이런 뜻에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 기뻐할 것을 기뻐하는 것이 곧 은혜 받은 심령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습니까.
1.24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
“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 because of your enemies, to silence the foe and the avenger.”(Psalms 8:2)
하나님은 연약하고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을 통해 대적들(원수들, 보복자들)의 잔꾀와 행패를 잠잠하게(끝장나게) 하십니다. 이 말에는 안식(휴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살벌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진정한 안식도, 휴식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대결(복수)하려는 욕구를 끝내려 하셨습니다. 이에 연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 있음이 곧 은혜요, 영적인 힘이요, 참된 안식입니다. 우리 영혼과 입술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까.
1.25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Psalms 8:4)
시인에게는 아귀다툼하는 인간과 세상이 눈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다 그렇지,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라며 코웃음 쳤을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지금 눈물이 핑 돌 만큼 감격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우주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창조하신 분이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자신을 알며 사랑하고 돌보신다는 깨달음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완벽하지 않고 때로 허무함과 무력감에 사로잡히며, 때로 시련과 상처 앞에 맥을 추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인간은 참으로 귀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5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인간과 자연은 모두 소중합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26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시 9:2)
“I will be glad and rejoice in you; I will sing praise to your name, O Most High.”(Psalms 9:2)
지존하신 주님은 우리 영혼에 웃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기쁨(웃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것의 긍정적인 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 ‘후천성 웃음 결핍증’에 걸린 이들이 많습니다. 시편 9편의 시인도 그럴 뻔했지만 자신과 함께하시는 주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다가(1절)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인생의 활력과 살맛을 더해줍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 것은 인생을 망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그리고 무엇에서 기쁨을 얻습니까. 진정한 웃음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나옵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1.27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
“The LORD is a refuge for the oppressed, a stronghold in times of trouble.”(Psalms 9:9)
사울에게 쫓길 때 다윗은 늘 심리적 압박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요새’라고 불렀습니다. ‘덮다, 감추다’에서 나온 말로 ‘높은 곳, 보호, 구출’이란 뜻입니다. 그는 또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환난을 당할 때도, 낙심할 일이나 불안한 상황이 올 때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도 늘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자신을 찾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신실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을까요. 사방에 적이 널려 있다 느껴질 때 우리는 어디에 잠시 등을 기대어 쉬고, 어디에 잠시 어깨를 기대며 하소연 할까요.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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