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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지 않습니다 | 운영자 | 2026-04-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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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셋째주일 / 장애인주일]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3:8-13 사도행전 10:34-43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그러한 기준들로 ‘정상’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보통 건강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를 당연한 기준으로 여기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결핍’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시선은 교회 안에도 스며들어, 우리는 쉽게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기준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사43: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굳어진 기준 속에 갇혀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을 알았지만, 선택을 사명이 아닌 우월함으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놓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놀랍게도 증인으로 부른 ‘너희’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고 결핍이 있고 연약함이 있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정한 ‘당연함’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기준 속에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 경계를 깨뜨리시고 고넬료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베드로가 스스로 붙잡고 있던 ‘당연함’이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나누고 있지는 않습니까? 장애인을 ‘도와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고 여기는 그 자리를 통해 일하시며, 그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십니다. 장애인은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증언하는 동역자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을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은 증인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기준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기준이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기준이 하나님을 가리고 있었다면 회개(悔改)해야 합니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어떤 조건에도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연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서는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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