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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여진 이름 (이사야 44:21-23, 마가복음 2:5-12)
운영자 2022-10-29 추천 1 댓글 0 조회 148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환란은 찾아오고 고통의 순간은 비켜가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도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중풍병자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에게는 분명 부모님이 지어준 자기 이름이 있을텐데도 그것보다는 중풍병자로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문둥병자라고 붙여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작은 자야(테크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말로 테크논이란 이것은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이나 딸을 부를 때 쓰이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다 중풍병자라고 부르는 그 사람에게 내 아들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육체 질병과 함께 그 사람 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최대한 존중하며, 아끼며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런 호칭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은 아마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원치 않는 병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가족에게 어려움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처럼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잘 아시는 주님은 그 사람에게 일부러 내 아들아하고 부르셨습니다. 바로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토록 다정하고, 우리의 심사를 정확하게 헤아리시는 주님이 그 사람에게 갑자기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중풍에 걸린 그 사람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단 한 명도 예상하지 못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과 치유는 중풍으로 찾아온 사람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말짱한 사람들 특히 서기관들에게도 해당됩니다.(5)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경악하는 그들의 반응은 그들이 정신적 중풍병에 걸린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게 있는 중풍은 어떤 것일까요? 무엇이 내 생각을 어떤 것에 못 박은 채 융통성 없는 고집불통으로 마비시키는가요? 어떤 습관(버릇)이 내 손과 발(실천)을 못 박은 채 돌아서지 못하게 마비시키는가요? 무엇이 우리 교회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안에 창의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고리타분한 모습으로 고정시키는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중풍을 육체만의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아(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여러 가지 연약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를 옥죕니다. 그렇더라도 신앙인은 그 환난의 시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는가 하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고 했습니다. 약한 그때 우리의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체가 드러납니다.

 

이런 뜻에서 어떤 때이든 관계없이 우리를 향해 내 딸아, 내 아들아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듬직한 버팀목이 되시는 이 붙여진 이름 안에서 웃음으며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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