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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터치 (열왕기상 19:3-8, 누가복음 22:1-5) 운영자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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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우리 영혼(인생)을 소생시키는 분입니다. 소생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낙심, 낙망, 좌절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우울이요 포기입니다. 마음이 눌려있고 의욕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신앙의 거인들조차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도 지금 그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왕상 19:4)

 

엘리야는 용기 있고 휼륭한 모습을 다 잃어버리고, 가시덤불 밑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보다는 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엘리야는 자기만족에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는 하나님의 물음에 14절처럼 엉뚱하게 동문서답했습니다.

 

다행히도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야 비로소, 그리고 호렙산의 동굴 속에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세상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겪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재발견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실망해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이런 기분, 이런 느낌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보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다시 손잡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며 실망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마치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시고, 또 직접 찾아오셨듯이 말씀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만 존귀히 여김을 받는 세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 하나님 안에서 사람들이 공존공영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용감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커다란 장벽을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엘리야는 거대한 장벽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이 다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하는 회의와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밀려드는 고독과 외로움을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고독과 외로움을 선물로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교만한 사람이 되어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왕상 19: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앙인과 고독, 믿는 사람과 외로움의 관계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독감을 느끼고, 때때로 외로움에 젖어 있는 것이 신앙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고독과 외로움도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감정이고,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양식을 공급하시고, 새로운 사명의 길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내일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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