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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는 힘 (욥 19, 25-27; 고전 15,14-19) - 전문
운영자 2020-04-13 추천 3 댓글 0 조회 110

(200412 욥 19, 25-27; 고전 15,14-1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욥 19, 25-27; 고전 15,14-19

다시 살아나는 힘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오늘의 증언

 

오늘도 가정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 믿음의 식구들을 상상하면서, 서로 서로에게 부활절 인사를 나눕시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할렐루야!” 손을 높이 들고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 예배마저 가정예배(영상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못가는 등 자가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자가 격리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단군신화에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호랑이와 곰이 나옵니다. 그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굴 안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100일을 견뎌내야 하는 자가 격리였습니다.

 

호랑이는 힘들고 고된 그 자가 격리를 견디다 말고 뛰쳐나갔습니다. 그 결과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곰은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 동안의 힘든 기간을 끝까지 견뎌내서 마침내 소원대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가장 큰 명절인 부활절입니다. 이 큰 명절마저도 가정예배(영상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자가 격리를 잘 견뎌냈던 곰이 마침내 소원을 성취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오늘도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거의 자가 격리 수준으로 생활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최후 승리의 발판을 구축하게 하시고, 기도와 영성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기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에는 아주 신비한 사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2000년 전 단 한 번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가난한 집에 어린아이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오셨고, 사람과 함께 사셨기에 우리의 모든 질고를 다 아는 분이 되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어 매장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가장 어둡고 답답하고 무서운 죽음의 문제를 깨뜨리셨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운 이 일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복된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힘을 솟아나게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한낱 지식일 뿐이며, 생명력 없는 종교철학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전 15:19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메멧 오즈(Oz·51)라는 외과의사는 심장 전문의입니다. 그는 미 컬럼비아대 의대교수이고 2005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심장수술을 집도했고 '오프라 윈프리 쇼' 건강 코너를 맡았었고 TV '닥터 오즈 쇼'를 진행하고, 국내에도 소개된 베스트셀러 '내 몸 사용설명서'의 저자이기도 한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예정에 없던 수술도 많아 본인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흰 쌀·빵·설탕과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 술은 사나흘에 딱 한 잔만 했답니다. 나이 50이 되었을 때 그는 반(半)세기나 살아온 기념으로 건강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 하나 만큼은 자신하였던 그는 검사를 담당했던 친구 의사에게 ‘의심스러운 용종(polyp)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순간 그는 ‘내게 남은 삶이 40년일까, 1년일까?’ 하는 생각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만 가지 생각이 났답니다. ‘아내한테 뭐라 할 것이고, 스물다섯 살부터 열두 살 되는 자식 넷한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청자들한테 사실대로 고백해야 할까. 내가 배우고 해온 일은 위기에 처한 환자를 고치는 것뿐이었지, 죽음을 앞 둔 이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에 대하여는 무엇을 공부했었나?’ 이제야 비로소 그는 자기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를 알게 됐다고, 자신이 너무나 교만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 것이 두려워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삽니다. 보통 사람은 ‘너 죽을래?’ 하면 꼼짝 못합니다.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마귀의 종노릇,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노예가 아닙니다. 이미 그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면, 거기에서 여러 가지 믿음의 항목이 생겨납니다.

 

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지금도 살아 활동하신다는 믿음

 예수님은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라는 믿음

 십자가는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자 우리 자신의 죽음이라는 믿음

 놀랍고 신비롭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위해 예비되었다는 믿음

 이 땅에 사는 인생은 우리가 장차 누릴 영원한 생명의 한 부분이라는 믿음

 죽음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믿음

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는 믿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들 몇 가지만 나열했을 뿐입니다.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이와 같이 세계관이 뒤집힙니다. 세계관이 이렇게 바뀌고 나면 자연스럽게 인생관도 변합니다. 세상을 대하는 모습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도 달라집니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온 사람이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듯이, 부활을 믿고 그로 인해 새로운 믿음이 생기면 우리의 옛사람은 죽고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인생이 달라 보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한 그대로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6-17)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2000년 전 태어나 유다 땅에 살았던 '역사의 예수' 혹은 '위대한 도덕 교사' 정도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최고로 알고 살아갑니다. 비록 그중에는 바람직하고 소중한 가치관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것이요, 세상에 속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 좋은 것을 얻으면 성공이고,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헛살았다고 합니다. 조금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 조금 힘든 일이 생기면 머리 싸매고 드러눕습니다. 부활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이번 사순절기에 우리는 ‘본회퍼 목사님과 함께하는 사순절기’라는 주제로 본회퍼 목사님이 남겨주신 신앙의 비밀훈련 과정을 밟았습니다. 오늘로 47번째 묵상자료를 여러분에 보내드렸습니다. 교회 홈피 자료실에 실려 있으니, 더 묵상하며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홈피로 들어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세족 목요일인 지난 4월 9일은 39세를 일기로 순교한 본회퍼 목사님의 순교일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1945년 부활절 후 첫 번째 주일인 4월 8일, 퓐더 박사가 예배를 인도해달라는 제안에 따라 그분은 감방으로 쓰던 쇤베르크(Schönberg) 교실에서 작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는 이사야 53장 5절과 베드로전서 1장 3절을 읽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예배가 끝날 무렵 신사복 차림의 남자 둘이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회퍼 죄수, 우리와 함께 가게 준비하시오.”

 

그 말은 ‘내일’ 교수형에 처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사람들에게 본회퍼 목사님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먼저 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끝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을 자유에 이르는 길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여겼던 본회퍼는 죽음을 두려움과 슬픔만이 아닌 새로운 소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목격했던 강제수용소(Flossenbürg) 담당 의사 피셔 휠슈트롱은 본회퍼 목사님의 마지막 몇 모습을 보며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막사에 있는 방의 반 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본회퍼 목사님이 죄수복을 벗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이 기도하는 방식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찌나 경건한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는 형장에서 다시 짤막한 기도를 드린 다음 용감하고 침착하게 계단을 밟고 교수대에 올랐다. 그리고 몇 초 뒤에 죽었다. 50년 동안 의사로 일해 온 나는 그분보다 더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어 자신의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본회퍼 목사님처럼 죽음 같은 공포와 절망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당당해집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육신을 따라 알던’ 옛지식을 던져 버립니다. 육신과 물질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눈을 뜨고 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자기 자신과 인생과 이웃이 달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도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자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옛 믿음을 버립니다.

 

 예수님이 유다의 청년들 중 하나요, 역사적 인간이라는 믿음

 예수님은 윤리 교사의 본보기라는 믿음

 이 세상의 것이 전부라는 믿음

 이 땅에서의 삶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믿음

 십자가는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믿음

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믿음

 하나님은 계시지 않거나 계시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

 나는 우연히 생겨나 지구촌에 살고 있다는 믿음

 

이렇게,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관 觀, perspective)이 바뀌면 살아가는 방법도 바뀝니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해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에 만족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벽돌 한 장이라도 쌓아가는 것이 목적이 됩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바칩니다.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씁니다.

 

욥기 19:25-27은 욥기 가운데서도 아주 빼어난 신앙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심한 병에 들어 비참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도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에 우리는 부활을 거의 자가 격리 상태로 보냅니다. 이 시간이 답답하고 힘들고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날을 보내느냐, 아니면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느냐는 우리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 자신의 인생과 가족과 이웃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면, 자가 격리의 이 기간이 참으로 소중해집니다. ‘꼭 해야 할 일 가운데 무엇을 하지 않았나, 하지 말았어야 할 것 가운데 무엇을 했나’ 되돌아 볼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게 됩니다. 이 어려운 시간에 세상과 지구촌을 한 번 더 돌아보며 지내면 우리의 처신이 한결 아름다워집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나를 보고, 새로운 세상을 보면서 새하늘과 새땅에 맞추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걷고,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일하고 쉬며,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

 

비록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음의 근심걱정이 있고, 육신의 연약함이 있더라도, 죽음까지 이기고 부활하셔서 성도의 부활을 위한 첫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승리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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