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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다(룻기 1:15-18; 요한복음 4:7-14) 운영자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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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라. 말은 그 다음이다.” 라고 래리 킹은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말이 어눌해도 진실이 담겨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공감을 느낄 때 비로소 빗장을 풀고 마음의 지성소에 같이 들어갑니다.

 

룻기에 나오는 시어머니 룻과 며느리 룻의 대화는 참 보기 좋고 아름다운 대화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의 처지를 배려하는 대화는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이런 대화의 롤 모델은 역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셨습니다. 본디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이면서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예수님 마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공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삭개오의 고독한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도자인 니고데모의 고뇌에 공감하셨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의 작은 신음까지 경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남들이 듣지 못하는 신음소리를 들으셨고, 남이 보지 못하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이런 뜻에서 지금 여러분이 앉은 이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처지와 형편과 신정에 공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주일 예배는 이렇게 소중한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런 모습으로 만나주신다는 본보기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여인과 만난 시간이 성경에는 여섯 시 쯤 되었더라고 합니다. 여기 제6시는 로마식으로 풀어서 오후 6시입니다.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이 저녁시간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의 시간일지 모릅니다. 어느 새 세월은 흘러 아침 같고 대낮 같던 인생이 서서히 저물어갑니다. 이제 그녀는 여섯 번째 남성과 살고 있습니다. 가슴의 목마름을 채워보려고 평생 애써 왔지만, 결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안고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허전한 가슴을 안고 살더라도 하루하루 주어진 나날을 살아내야 하기에, 이 여인은 물동이를 안고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누가 이 여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저물어가는 인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점점 늙어가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인생에게 영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과 감정에 공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족의 말없는 말에, 이웃의 소리 없는 신음에, 지인의 웃음 속에 감추어진 헛웃음에 경청하는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달려가 대화를 시작했듯 말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고 나니, 자기 마음도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기를 흉보던 사람들에게도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용과 공감과 경청의 마음으로 늘 다시 시작하노라면 죽을 때까지도 인생의 황혼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늘 아침과 같고 대낮같은 모습으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가 문자 그대로 우리 영혼에 마음에 몸에 생활에 실현됩니다. 이런 은혜가 온전히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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