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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특별전 : Chagall and the Bible 정주현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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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마이아트뮤지엄은 독창적인 소재와 화풍으로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화가 샤갈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서’를 주제로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Bible〉을 2021년 11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136일간 개최한다.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 태생의 화가로 프랑스에 정착한 화가로,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샤갈 특별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와 함께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푸른 다윗 왕〉을 포함하여 유화, 과슈화, 석판화, 그리고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및 독일 뮌스터 파블로 피카소 미술관의 소장품 등 총 220여 점의 명작들이 공개된다. 그는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전쟁과 학살로부터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런 그의 성서에 담은 인류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나는 성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성서에 매료되었다.

나의 예술에 있어 완성은 성서적 원천에서 비롯된다."


전시기간2021.11. 25 - 2022. 4. 10
관람시간 월-일 10:00 - 20:00 (입장마감 19:00)
장    소 마이아트뮤지엄(2호선 삼성역 4번 출구)
성    인 20,000원
청 소 년 12,000원
어 린 이 10,000원


작가소개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도시였던 비텝스크의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모이셰 샤갈(Moishe Shagal)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스물 네 살이던 1911년 처음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도착한 그는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르는 모더니즘 회화를 습득하였고, 이름 또한 프랑스식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하며 파리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샤갈은 연인이자 자신의 뮤즈였던 벨라와 결혼하였다 딸 이다를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1922년 다시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샤갈은 1930년 성서 작업을 의뢰 받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 샤갈은 본격적으로 성서를 주제로 한 작업을 이어간다. 하지만 샤갈은 나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러시아 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은 철거되는 등 퇴폐예술가로 낙인찍힌다. 그는 망명을 간 미국에서 유대인의 운명과 고난에 대한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다. 1944년 비로소 파리가 해방되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연인 벨라를 잃은 샤갈은 결국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정착했다. 남프랑스에 정착한 샤갈은 자신의 말년을 성당을 위한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발레 무대세트와 의상 그리고 석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보냈다. 특히 1973년 성서적 메시지를 주제로 한 국립샤갈 미술관을 니스에 건립하면서 그의 성서 예술을 담은 그의 평생의 꿈을 실현했다. 



전시구성

Section 1. 샤갈의 모티프 Motifs of Chagall

첫 번째 섹션은 1956년경에 제작된 석판화를 통해 화가 샤갈의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 주요 모티프들을 살펴본다. 샤갈은 1922년 베를린에서 자신의 자서전 『나의 삶(Ma vie)』의 삽화를 만들 때 에칭 기법을 사용했고, 이후에도 성서, 『오디세이』 등을 주제로 예술잡지에 많은 삽화를 에칭으로 제작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석판화 제작기법에 흥미를 느꼈고, 페르낭 무를로(Fernand Mourlot)의 스튜디오에서 이 기술을 숙련한다. 이번 섹션에서는 1956년대경에 제작된 샤갈의 석판화 안에서 그가 주로 다뤄온 모티프인 자화상, 고향, 마을, 축제, 동물, 악기, 연인, 성모자, 파리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여러 모티프 중에서도 샤갈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샤갈은 1911년 스물넷의 나이에 처음으로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당시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소니아와 로베르 들로네 부부(Sonia, Robert Delaunay),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등과 같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샤갈은 야수파, 입체파 등의 모더니즘 회화를 접했다. 이후 모이셰 샤갈(Moishe Shagal)에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개명한 그는 파리에서 점차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갔다. 1914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인 비텝스크를 찾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러시아에 남게 된 샤갈은 1923년에서야 전쟁이 끝나고, 다시 파리로 복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가 파리를 배경으로 제작한 석판화에는 에펠 탑, 노트르담 성당, 콩코르드 광장 등 파리의 주요 명소를 배경으로 그의 모티프들이 화폭에 수놓아졌으며 낭만적인 파리의 광경이 펼쳐진다.  

 


 


Section 2.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105 Scenes from the Bible 

1922년 공산권 예술가들과 갈등을 빚고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돌아온 샤갈은 이듬해 저명한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를 소개받고 그의 제안으로 고골의 『죽은 혼』, 『라 퐁텐 우화』의 삽화 작업을 이어온다. 1930년 볼라르는 샤갈에게 차기 작품으로 ‘성서’를 주제로 작업할 것을 의뢰한다. 이 제안을 받은 샤갈은 더불어 같은 해 파리에서 유대인 예술 박물관을 지을 계획이 있던 텔 아비브(Tel Aviv) 시장 메이어 디젠코프(Meir Dizengoff)와 만나게 되는데, 디젠코프는 샤갈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한다.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깊은 감명 받은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성서 에칭 마케트(Maquette)을 위한 40여 점의 과슈 연작을 완성했다. 예루살렘의 첫 방문과 성서 삽화 작업을 시작으로 샤갈은 성서라는 모티프를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하게 되었다. 이런 샤갈의 성서에 대한 열정은 향후 25년의 작업 끝에 테리아드 출판사(Tériade)의 편집과 함께 에칭 105점을 수록한 베르브 판(Edition Verve) 성서를 완성하게 된다. 이번 섹션에는 샤갈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남긴 예루살렘의 풍경과 그가 구약성서에서 선별한 105점의 장면들을 에칭으로 만든〈성서(The Bible)〉 연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본다. 이 시리즈에는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는 모습부터, 신비로운 예지몽을 꾸고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12명의 형제를 모두 이집트로 데려오는 요셉, 이집트의 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한 모세의 이야기 등 구약성서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샤갈은 이 연작에서 성서의 내용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그의 삶 속에서 마주했던 일상에 성서의 장면을 더해 한 장면씩 차근차근 완성해 갔다. 각 성서의 이야기 중에 샤갈이 어떤 장면을 선별했고 또 그 장면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묘사했는지 주목해보며 이 작품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다. 




Section 3. 성서적 메시지Biblical Messages

세 번째 섹션은 샤갈이 주요하게 다루는 성서적 모티프들을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 모아 본다. 샤갈은 1933년 독일에서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인민 사회주의 나치즘으로부터 러시아 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퇴폐미술가로 낙인이 찍혀 독일 미술관에서 작품이 철거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39년 전쟁이 선포되던 해에 그는 마르세유에서 체포되었고 국제 구조위원회의 도움으로 그는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유대인 집단 학살을 목격해야만 했던 샤갈은 큰 충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들은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서도 전쟁과 유대인의 운명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전시장에서 또한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인 〈순교자, 습작〉(1940), 〈강박 관념, 습작〉(1941), 〈강기슭에서의 부활〉(1947)을 만나볼 수 있다. 샤갈은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유대인의 희생과 결부 지었으며,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탈출기(출애굽기) 일화를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해방된 유대인들로 재해석하여 담아냈다. 이번 섹션은 인간 창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십계명을 받아 든 모세, 체구의 열세를 딛고 거인 골리앗의 전략으로 이긴 다윗, 지혜로움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 등 샤갈이 성서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주로 그려낸 성서적 모티프들을 주제별로 엮어 유화, 과슈화, 석판화 그리고 대형 태피스트리까지 작품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 종합해본다. 샤갈이 동시대에 겪은 삶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성서를 주제로 그림 속에 담은 부분과, 성서 안의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한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왜 샤갈의 작품들이 성서를 다룬 예술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ection 4. 또 다른 빛을 향하여 Towards Another Light 

네 번째 섹션은 전쟁이 끝난 후, 지중해의 햇빛에 매료되어 남프랑스에서 정착해 노년을 보내며 쉬지 않고 작업을 다방면으로 이어갔던 샤갈의 행보와 예술적 열정을 탐구한다. 1950년경 방스로 이주한 샤갈은 피카소, 마티스 등과 이웃으로 지내며 예술적 교류를 이어간다. 그는 1966년 생폴드방스로 이주해 생을 마칠 때까지 머무른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샤갈은 메츠 대성당(Cathédrale Saint-Étienne de Metz) 등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고, 책 삽화 작업을 위한 석판화에 매진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탐구하면서 그의 경력에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샤갈은 말년에도 성서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는데, 특히 신약성서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샤갈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노년 작품에도 반영된다. 샤갈은 젊은 시절부터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폴 엘뤼아르(Paul Éluard)와 교류했고, 자기 자신 또한 시 쓰기에 많은 열정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68년에는 샤갈이 ‘고향’, ‘화가로서 정체성’, ‘유대인의 운명’ 등을 주제로 쓴 시와 직접 그린 삽화를 엮은 시집『시(Poèmes)』가 출간되었다. 이번 섹션에서는 샤갈의 문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샤갈의 삽화와 시를 같이 공개한다. 그 밖에도 샤갈의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기념하며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비롯해 샤갈이 제작한 감각적인 포스터들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아흔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창작욕을 엿볼 수 있는 말년 작품들을 만나본다. 특히 샤갈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알려진 〈또 다른 빛을 향하여 (Vers l’autre Clarté)〉(1985)는 끝까지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샤갈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원문 출처: http://www.myartmuseum.co.kr/exhibit/exhibit_ing.php?ptype=view&prdcode=2011200003&page=1&catcode=1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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