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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래를 불러라, 평화의 춤을 추어라 정주현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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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doch.org/bbs/bbsView/28/5829383

본 게시물은 2020.11.28 한겨레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의 요약본 입니다. 자세한 기사 전문은 게시물 하단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 신학자, 목사, 시인.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어느 이름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늦봄 문익환(1918~1994)의 옥중편지가 디지털 아카이브로 되살아난다. 1999년 발간된 <문익환 전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오픈 아카이브에도 그의 편지 내용과 원본 이미지가 일부 실려 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통일의집은 문 목사가 1976~1993년 사이 6차례, 123개월의 수감 생활 동안 쓴 옥중편지 800여통 전체의 전문과 이미지를 새달 1일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를 열어 공개한다.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것과, 첫 수감 40일 만인 1976년 4월11일 처음으로 아내 박용길 장로에게 쓴 것을 비롯해 최근 새로 발견한 편지 49통 등 포함돼있다. 이 가운데 89통을 골라 실은 책 <늦봄의 편지>도 같은 날 발간한다. 책은 비매품으로, 12월7일까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프로젝트를 후원하면 받아볼 수 있다. 위 사진 봉함엽서 수신인 ‘문바우’는 그의 손자고, 까맣게 칠해진 곳은 사전 검열로 삭제된 것이다. 그의 편지에서 ‘문익환’의 현재적 의미 네 가지를 찾아봤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통일의집 제공

 

“한 달에 한 번, 혹은 이렇게 한 번 더 편지를 쓴다는 기쁨이 홀로 사는 생활의 외로움을 무지개로 날려 버리는군요. 이 작은 흰 지면은 저에게는 금싸라기같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제 마음의 무늬를 옮겨 놓으면 날 것 같은 기분이 된답니다. 몸과 마음을 깎아 사랑해 주시는 아들 드림”(1982년 11월24일 아버님께)

가로 19㎝, 세로 30㎝ 봉함엽서는 늦봄 문익환 목사의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다. 부모, 아내, 자녀, 손자녀, 동생, 조카, 지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엔, 한 달에 고작 한 차례 허락된 봉함엽서 한 장이 너무 작았다. 네 번째 수감된 1985년부터는 2~3일에 한 차례로 편지 쓸 기회가 늘었지만 지면이 비좁긴 마찬가지였다. 그렇잖아도 읽기 힘든 악필에, 행갈이도 띄어쓰기도 대부분 무시한 채 빽빽하게 쓴 편지는 감옥 담장을 넘어 서울 도봉구(현재 강북구) 수유동 527-30 자택(현재 통일의집)에 당도했고, 여러 장의 복사본으로 불어나 옥중의 문 목사와 세상이 함께 살도록 했다.

봉함엽서가 접히는 부분인 날개에까지 쓴 편지들은 보통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을 훌쩍 넘긴다. 58살에 시작된 6차례의 옥살이 도합 123개월 동안 남긴 800여통의 편지는 그대로 ‘문익환’이다. “우리 세대의 좌절을 너희 세대가 겪는다는 것은 바라지 않”(1979년 5월16일)고, 손자녀들의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아도 한 점 티 없는 생을 살려고”(1987년 3월3일) 했던 할아버지,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될 지압점을 알려주며 유치원생 같은 그림을 그리고는 “내 그림 솜씨, 이만하면 근사하지?”(1992년 7월4일, 새로 발견된 편지 가운데 하나)라고 웃음을 안겨주던 아버지, “무언가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네 친구들의 생을 밀고 가는 힘이라고 했지? 그게 양심인데, (…) 양심이 오늘의 복잡한 역사적·사회적 현실에서 나침반 구실을 하려면, 정말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1986년 12월13일)고 조언했던 큰아버지. 어떤 이에게든 존경할 만한 ‘어른’이 문 목사였다.



1979년 12월 두번째 출소 뒤 서울 수유동 자택에서 어머니(왼쪽 둘째) 등과 함께 기뻐하는 문 목사(가운데). 통일의집 제공 

 

이런 면모는 수감된 지 40일 만인 1976년 4월11일 처음 박용길 장로에게 쓴 편지, 1979년 9월10일 아내에게 ‘용서’에 관한 생각을 밝힌 편지, 박 장로가 양심수 서예전 등의 참석차 일본과 프랑스를 방문해 한국에 없었을 때인 1992년 4월21일~7월10일 큰아들 호근씨에게 보낸 편지 등 최근 발견된 편지 49건을 통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문익환 평전>을 쓴 김형수 작가는 “어떤 수난과 시련 속에서도 문 목사는 온기와 사랑을 잃지 않고 삶의 환희를 만들어냈다. 그의 옥중 편지는 지금도 시련에 빠진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사 전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2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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