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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인간애 토로한 '시인' 문익환 정주현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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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문익환 목사 [사계절 출판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게 누구 손이지/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손이 손을 잡는다/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인정이 오가며/마음이 마음을 믿는다/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내일이 밝아 온다"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상징 문익환(1918∼1994) 목사가 쓴 시 '손바닥 믿음' 전문이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 교수이자 목사로 활동한 그는 1968년부터 구약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에 후기로 쓴 글에서 시인이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학작품 중의 문학작품이라는 구약성서를 어떻게 훌륭한 작품으로 옮겨 내느냐는 생각이 처음부터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소. '특히 그 시들을 어떻게 하느냐?' 처음에는 한국 시단을 총동원할 심산이었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나는 궁지에 몰리게 된 셈이었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시 공부를 시작할 밖에 없었던 것이오."

사회운동가의 모습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시인 문익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시집이 나왔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사계절). 그가 생전 펴낸 시집 5권('새삼스런 하루', '꿈을 비는 마음',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두 하늘 한 하늘', '옥중일기')과 신문·잡지에 발표한 시 가운데 70편을 뽑아 묶었다.

문익환 목사 [사계절 출판사 제공]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은 문 목사를 "일흔여섯 생애 중 여섯 차례에 걸쳐 11년 2개월을 옥중에서 보냈던 우리 민족의 겸허한 심부름꾼", "설움 많은 민중의 동무이자,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에 맞서는 전선의 척후병"이라고 표현했다.

군부독재 시대에 사회운동을 하며 수없이 옥고를 치른 그는 긴 옥중생활에도 가슴 속 절절한 사랑을 시로 썼다. 당대 폭압의 현실에서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 남북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향한 열망, 민주화·노동·통일운동을 하다 스러져간 젊은 열사들에 대한 애도와 연대의식이 오롯하다.

"한국의 하늘아/네 이름은 무엇이냐/내 이름은 전태일이다//(중략)//가을만 되면 말라/아궁에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이 땅의 풀이파리들아/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그야 물으나마나 전태일이다//(중략)//전태일 아닌 것들아/다들 물러가거라/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당장 물러들 가거라/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전태일' 중)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이건 진담이라고//(중략)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돌아가는 거지//(중략)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잠꼬대 아닌 잠꼬대' 중)

당대 남성 중심 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들의 아픔에 공감한 시들도 눈에 띈다.

"나는 70년대에 사내라는 게 그리도 부끄러웠다/동일방직 쪼깐이들의 아우성을 들으며/걔들에게 똥을 퍼먹이는 것이 사내들이었거든/회사마다 여자들은 정의를 외치는데/사내라는 것들은 기업주들의 앞잡이였거든/드디어 사내들도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걸 보며/가까스로 사내라는 부끄러움을 씻어 내고 있었는데/나는 오늘 네 사진을 보면서/사내라는 게 또 부끄러워지는구나/이 얼굴에 침을 뱉어라" ('인숙아' 전문)

문익환 목사와 부인 박용길 장로 [사계절 출판사 제공]

부인 고(故) 박용길 장로와 부모,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쓴 시들에는 지극한 애정이 담겨 있다.

"'쉰까지만 살았으면'/하던 폐병 들린 허약한 소원이/꺾일 듯 꺾일 듯 하다/지나치기 이미 4년,/365일을 네 곱 해서 1460일/그 하루하루를 나는/덤으로 살았다.//여섯 달 살고/혼자 되어도 좋다며/시집온 아내/그 나팔꽃 같은 마음에 내 목청을 다 쏟고/펄럭이는 가슴 옷자락에/아내의 체온을 묻히며 살기/벌써 28년,/이제사 나는/덤으로 사랑을 알 듯하다." ('덤' 중)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 윤동주, 그를 사회운동의 길로 뛰어들게 한 장준하를 호명하는 시들도 만날 수 있다.

요즘 젊은층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박준은 선배 시인 문익환을 이렇게 표현했다.

"땀이었다가 눈물이었다가 피였다가 그것들 다독이며 잘 마르게 하는 볕이었다가, 서러움과 흐느낌 모두 함께 데리고 넘어서는 슬픔이었다가, 우리의 하늘과 가장 닮은 얼굴이었다가, 나직하게 운을 떼는 목소리였다가, 세상을 흔드는 일갈이었다가, 너무 많은 죽음들과 함께했던 생이었다가, 이 "모든 걸 버리고" 다시 "모든 걸 믿으며 모든 걸 사랑"했던, 오랜 기다림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시인 문익환."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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