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사람들 (창세기 32:29-32, 요한복음 16:16-22) | 운영자 | 2023-04-22 | |||
|
|||||
창 32:24은 ‘야곱이 홀로 남았더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야곱이 홀로 된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야곱은 어두운 밤, 쓸쓸한 나루터에 홀로 남았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아킬레스, 미케네의 왕 메넬라우스가 신들과 씨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것은 고난과 재생을 상징합니다. 야곱은 이 씨름에서 고관절을 다쳤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 동안 그는 다리를 절며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이 일은 야곱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야곱은 이 씨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은 여러 가지로 풀이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기도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여, 다스리소서’라는 기도입니다.(V. Hamilton)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태어나 세상적인 것을 붙들고 살아가던 야곱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화가 폴 고갱은 한껏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이 씨름을 가족들이 지켜보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응원하는 모습으로 그려내었습니다. 야곱의 가족과 식솔들은 그 나무 아래서 기도드리며, 야곱이 이기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림의 이런 장면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야곱과 같은 장소에 있지 않았어도 그의 가족과 식솔들은 야곱이 무사하기를, 자신들에게 건장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야곱은 홀로 남았어도, 실제로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창 32:1-2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400여명을 거느리고 오는 야곱의 형 에서를 보시고,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 응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때때로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하고 외롭더라도, 바로 그 순간조차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께서 언제 어느 때에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누군가 어떤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의식할 때 우리는 혼자이면서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수도사랑의학교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목요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장애아동들과 늘 함께 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수도사랑의학교 교직원 모든 분, 그리고 우리 수도교회 성도들은 다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이 여인들과 같은 심정입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우리 아이들, 사랑하는 그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장애를 안고 씨름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호전된 모습으로 성장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장애를 안고 씨름하는 생활에서 승리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