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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예레미야 애가 5:19-22, 사도행전 9:32-35) 운영자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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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는 아주 치욕스럽고 절망의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그 시련과 고난 속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바라보며 소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소망을 품는 실마리는 첫 번째로 애 3:20-23에 있습니다. 완전히 낙심에 빠지고 소망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예레미야는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갑자기 낙심이 소망으로 바뀌게 되었나요?

 

지금 힘들고 비참한 상황이 변했나요? 아닙니다. 생활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답답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예레미야가 이렇게 소망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을 주님의 눈으로 자신과 현실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21)

 

소망을 품는 실마리 두 번째는 애 5:1입니다. 여기서 기억하소서라는 기도에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는 자카르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자카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징계처럼 보이는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하며 상실의 아픔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주께 기억해달라고 간구하는 자카르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자카르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심령에 찾아오십니다.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소망을 품는 실마리 세 번째는 애 5:21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에는 한편으로 가장 어렵고 힘겨운 시간이,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 한편으로 힘겨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소망을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짐작할 수는 있을지언정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것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미래 세계를 설계할 때 과거를 되돌아봅니다. 지나간 옛 역사에서 미래 세계에도 적용될 만한 것이나,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좋을 것을 찾아냅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서로 얽혀 돌아가며 상호작용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 애가의 말씀은 25백여 년 전 옛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 유대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상실과 폐허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오늘 우리에게도 일상적인 경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레미야 애가가 처음 외쳤던 그 탄원과 그 기막힌 현실, 그것에 버금가는 일들은 오늘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하나님 앞에서 애가의 시인이 목이 아플 정도로 불렀던 마지막 노래는 오늘날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다시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헤세드를 믿으며, 소망을 품고, 탄식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가득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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