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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시편 103:13-18, 야고보서 5:7-11) 운영자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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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는 참음(인내)으로 옮겨진 낱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마크로두미아)는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네 번째 열매(오래 참음)와 야고보서 57-8절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농부가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조급해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면서 정해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을 당할 때에도 낙심치 않고 굳건하게 잘 참아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욥의 인내(휘포모네)를 가리키는데 사용된 낱말입니다.(5:11)

 

우리 곁에는 참고 견뎌내야만 할 것들이 항상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인내에 관한 말씀인 야고보서 57-11절이 대림절 둘째 주일 말씀으로 주어졌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51-6절에서 세상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에 관해 말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악한 부자는 로마제국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 당시 최고 문명이었던 로마는 악한 부자와 같았습니다. 기독교인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로마 문명에서 자기들의 구원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주님의 내림으로만 구원과 참된 행복이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구원과 행복을 제공하지 못하는 악한 부자와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에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에 거기서 벌어지는 오만가지 현상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면서 살아가곤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제 생활 과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들어내실 미래를 신뢰하는 사람은 현재를 즐기며 살아갑니다. 당장 좋은 것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당장 나쁜 것도 결국에는 좋은 것으로 전환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불평과 불만으로 반응하는 대신 참음과 인내로 대처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고백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고전 16:22; 22:20 참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부패, 세상 풍조 앞에 서더라도 하나님 한 분 밖에는 무서워하지 않으며 진리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믿음으로 살다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가며 자기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는 기쁜 소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이 말씀에 의지하여 소란한 세상에서도, 불의하고 부패한 세상에서도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하는 자세로 사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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