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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언제나 신비롭다(이사야 59:19-21, 로마서 11:29-32) 운영자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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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도, 다른 사람의 구원과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구원을 신비한 일이라고 했습니다.(25절)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선택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복음)를 1) 믿지 않고 2) 거부하는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구원의 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아직도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6) 이때‘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 그 능력이 어디서 발휘되었냐?’를 묻는다면 11장 31-32절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원동력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자비)이라는 말로 나타냈습니다.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억지로 외면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바나바 일행은 이방인 선교에 뛰어들면서 이렇게 깜짝 놀랄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이방인들에게 은혜가 풍성해지는 일은 사도들 자신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분법, 편 가르기에 익숙합니다. 교회도 사람은 둘로 나눕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 그렇게 나뉘면 무엇이 생깁니까? 거기에 두터운 장벽이 생깁니다. 경계선에 날카로운 철조망이 쳐집니다.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어’ 이렇게 양분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이분법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 만으로’ 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자기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선택하거나 거절하며 경계선을 철통같이 방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것, 이루어 가실 것의 크기와 깊이, 높이와 넓이를 강화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그는 감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6절)고 선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와 장차 ‘새 이스라엘’이 될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하며, 인간의 경계선을 걷어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듯이, 십자가와 부활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긍휼과 은혜, 너와 나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긍휼과 은혜, 온갖 종류의 인간들을 다 불러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웃음을 창조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놀라운 긍휼과 은혜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 은혜와 긍휼의 바다에서 지구촌의 모든 사람과 바로 우리 곁에 사는 믿음의 형제자매 및 이웃을 품는 우리가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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