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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할까, 걱정과 함께할까? (시 31,1-5; 벧전 2,21-25) - 전문 운영자 20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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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6(시 31,1-5; 벧전 2,21-25)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시 117)

 

시 31,1-5; 벧전 2,21-25

주님과 함께할까, 걱정과 함께할까?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오늘의 증언

 

시편 31편에는 근심걱정을 한 아름 안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 이름은 다윗입니다. 그가 근심걱정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이 9-13절에 나옵니다.

 

9 여호와여 ...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시 31:9-13)

 

사람이 근심걱정에 휩싸이면 재수 없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나 자신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내가 스스로 만드나요?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흔히 재수 없는 생각, 좋지 않은 생각을 잡초에 비유하곤 합니다. 농사군이 논밭에 잡초를 심나요? 아니지요. 잡초를 전혀 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나요. 걱정을 키우며 사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걱정을 키우면 어떻게 됩니까? 걱정에 점점 말려 들어가고, 점점 더 재수 없는 생각에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옛어른들은 걱정을 키우지 말라는 하셨습니다. 걱정이 너무 심해지면 사람은 너무나도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마치 아주 엄한 시어머니 슬하에서 고생하는 어느 며느리가 부르는 노래가사와 같이 행동합니다.

 

시어머니 줄라꼬 줄라꼬 호박을 삶았는데 우야꼬 우야꼬 요강단지 삶았네. 시어머니 줄라꼬 줄라꼬 라면을 삶았는데 우야꼬 우야꼬 기저귀 줄 삶았네,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 재수 없는 생각이 떠오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실제로 잘못 볼 수가 있습니다. 근심걱정을 키우며 살면, 문제해결과 완전히 동떨어진 행동도 나옵니다. 감정이나 기분에 끌려다니다보면, 우울헤지고 혼란스러워 생활마저 뒤죽박죽이 됩니다.

 

근심거리가 마음에 있을 때, 걱정거리가 생각을 짓누를 때, 우리는 일부러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싱의 진싱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현실에는 반드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의 비율이 있습니다.’ 이것을 축구경기나 야구경기에 비유하자면, 인생에는 10:0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거기엔 나쁜 것도 섞여 잇고,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거기에는 좋은 것도 들어 있습니다. 7대3, 6대4, 5대5 3대7 2대8 이런 식입니다. 전문가라고 하면서 조언도 하고 미래도 예측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일이나 사람의 상태를 10:0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걱정을 키우지 말라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 자들은 걱정근심을 자꾸 부풀립니다. 사람들 중에는 저 사람이 전문가니까 하면서 그 말을 믿어도 되겠지 하며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전문가 이전에 환자입니다. 불안을 유포하는 자들은 그 사람의 지위나 학력이나 경력 이전에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입니다. 만일 그런 환자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그들이 조언하는 대로 따라간다면, 우리의 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습니다. 전문가들 중에서 ‘비록 지금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요소를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귀를 기울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전문가 중에서 미래를 어둡게만 전망하는 자, 불안감이 더 커지게 만드는 자에게는 등을 돌리십시오. 이런 자들은 청중이 힘들어 하는 것, 괴로워하는 것, 자기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환자입니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의 심리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세치 혀에 놀아나는 것, 자기가 쓴 몇 줄의 글에 놀아나는 것에 쾌감을 느낍니다. 이런 자들은 다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 같이 겪는 코로나19 사태는 1년이나 10년 갈 일이 아닙니다. 조금 시일이 지나면 반드시 잡힐 일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절묘하게도 이번 코로나19기간은 사순절기과 부활시기에 맞물렸습니다. 사순절기과 부활시기는 괴로움과 불안과 고통의 기간이 아닙니다. 이 기간은 자기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인생과 세계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간입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코로나19 기간에 잃은 것보다 얻을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요?

 

1) 다소의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 몸과 마음에 코로나19에 대항하는 항체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소득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코로나19만이 아니라 다른 질병에도 대처할 항체를 얻었습니다.

 

2)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신뢰도가 높아졌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사재기를 하지 않는 국민의 수준이 높이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펼친 방역대책에 여러 나라들이 본받으려 하면서,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전세계에서 높아졌습니다. 평소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던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이 다 쩔쩔매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에 그동안에는 일본인에 대한 신뢰도가 한국인에 대한 그것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것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의 신뢰도는 최고로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곧 무역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진단키트나 마스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세계인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IMF는 금년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을 예측하면서, 세계 주요 선진국이 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이 –2.8%라고 예측했습니다. -2.8% 성장은 비록 '–'(마이너스) 더라도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입니다.

 

3) 국가의 위기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재정비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해 정부가 채택한 대처방법에는 부분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대체로 옳았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이끄는 방향에 따라 가면서, 앞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한 제도와 제체를 갖추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사이비 종교집단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학업을 포기하게 하고, 가정을 벗어나게 하며 집단 훈련을 시켰던 신천지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기성교회들이 많은 성도를 사이비 단체에 빼앗기는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교권다툼을 하고, 직분다툼하는 것이 곧 불신앙인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단과 정통을 가려내는 데에는 교리나 신학의 차이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보통 신앙인이 복잡한 신학이론을 어떻게 다 알고 이단인지 정통인지를 분별하겠습니까?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사람이 타고난 불안심리를 완화시켜주느냐, 강화시켜주느냐로 판가름납니다. 불안심리를 건강한 방법으로 딛고 일어나 건전하게 살게 하느냐, 불안심리를 이용해 정상적인 생활에서 이탈하게 하느냐로 정통이냐 이단이냐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걱정을 키우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 상식에 속하는 이 말과 반대로 행동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단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단은 사람에게 본디 있는 걱정 근심 불안해 하는 마음을 키워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5) 어려운 시기는 옥석이 가려지는 시간입니다. 평소에 알던 사람의 진가를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자, 수많은 소식과 말이 언론과 SNS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만히 생각하면서 살펴보면, 누가 헛소리를 하는지,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누가 트집을 잡으려 하는지, 누가 방역 활동의 발전을 위해 말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너달 동안 계속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는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조금은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6) 위기가 단순히 위기가 아니라 대처하기에 따라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주의자들은 모든 일에서 어려움을 본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일에서 기회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1:9로 보이는 가장 어려운 시간에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1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 하나를 지렛대로 삼아 다시 일어섭니다. 비관주의자들은 역경 그 자체에 파묻힌 채 불안해하며 징징거리며 삽니다.

 

7) 일상생활에 주어진 복을 잊고, 있는 것에 감사드리는 대신에 아직 없는 것에 집착하며 달라고만 하던 신앙이 감사하는 신앙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8)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집, 성전에 나와 드리는 예배가 소중한 것을 다시 절감했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가 함께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9) 근심걱정거리가 많은 우리는 위태위태한 순간을 보내던 다윗을 보며 인생의 롤모델을 발견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근심걱정거리와 함께 사는 대신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10) 신앙생활의 의미를 재발견했습니다. 주일예배, 성도의 교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며 의지하기 등 신앙의 기본이면서도 평소 소홀히 하기 쉬었던 일들이 주는 인생의 활력과 의미를 되새기는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생기기 전부터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리라는 예측을 했던 빌 게이츠는 최근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세계대전에 비유했습니다. 이번 전쟁은 인류 모두가 다 한편(we’re all on the same side)입니다. 전에 있었던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모든 전쟁에는 내편 네편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것과 달리 코로나19와의 전쟁에는 적과 아군이 따로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나라와 민족을 초월해 모두가 다 같은 편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서너 달 동안 우리 중에는 우리나라 안에서, 또 외국과의 관계에서 자꾸 편을 가르고 담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거나 대구 또는 중국을 봉쇄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편만 생각하면 일리가 있어 보이더라도, 넓고 크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철이 없는 그런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모두가 함께 견디고 함께 힘을 합쳐 이 일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빌 게이츠는 이 전쟁을 끝내려면 몇 가지 혁신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입니다. 축구 경기나 콘서트와 같은 공공 모임에서도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려면 95% 이상의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빌 게이츠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많은 노력이 지금까지는 실패했더라도 앞으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둘째로 백신 개발입니다. 빌 게이츠는 "기적같은 치료법은 없다"면서 사람들이 일상적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백신 개발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새 질병에 대한 백신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는 보통 5년이 걸리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은 18개월 안에 만들어지리라고 예상했습니다. 짧으면 9개월에서 길면 2년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하니, 우리 마음을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하면서도 느긋하게 다독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최대한 시행하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넷째로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철저히 추적해야 합니다. 감염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진단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이웃의 생명과 안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9번 동안 가정(영상)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거의 자가격리 수준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생활이 계속될 것입니다. 마치 이 봄날에 꽃샘추위가 계속되듯이, 우리 생활에도 당분간 꽃샘추위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시 31:15-17)

 

우리의 피난처요, 견고한 바위요, 구원하는 산성이요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 모두의 신체적인 건강과 생활의 안정과 영혼의 웃음을 지켜주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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