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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사 40:26-31; 벧전 1:3-6) - 전문
운영자 2020-04-20 추천 2 댓글 0 조회 104

200419(사 40:26-31; 벧전 1:3-6)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 34:1-4)

 

 

사 40:26-31; 벧전 1:3-6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 오늘의 증언

 

오늘은 4.19 60주년 기념일입니다. 또한 24절기 가운데 곡우(穀雨)입니다. 곡식 곡(穀)자에 비우(雨)가 합쳐진 곡우는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며 붙여진 이름이지요. 서해에서는 전남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 떼가 충남 태안반도 앞 격렬비열도 근처로 올라옵니다. 이때 잡히는 조기를 ‘곡우살이’ 또는 ‘앵월굴비’라고 해 최상품으로 쳤습니다. 곡우 무렵에 따는 차를 곡우전차(穀雨前茶) 또는 우전차라고 해서 녹차 중에서도 특상품으로 칩니다. 비록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 제주도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서울에는 오후 6시 전부부터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었기에 이 비는 말 그대로 단비입니다. 오늘 저녁에 비가 넉넉히 오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수도사랑의학교 헌신예배를 드리며,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기도를 드리는 날입니다. 각자 가정에서 기도드릴 때, 장애인과 그 가족들, 수도사랑의학교 교직원들, 어린이와 그 가족들 그리고 정부의 장애인 정책을 위해서도 반드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초대교회의 주요한 지도자 세 사람 베드로와 요한과 바울에게 별명을 하나씩 붙여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믿음의 사도,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 사도 베드로를 소망의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 전후서는 사도 베드로가 지금의 터어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교회와 성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그들은 매우 심하게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갑바도기아 지방에 살던 성도들은 핍박을 피하여 땅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 살았습니다. 그 깊이가 지하 8~20층이나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그들은 그런 정도의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앙을 굳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편지를 시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2절)

 

사도 베드로는 지금 교회와 성도들이 처한 현실을 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박해받는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이렇게 권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소극적인 위로가 아니라 적극적인 소망인 것을 그분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소망의 사도’라는 자기 별명에 걸맞게 박해와 핍박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소망, 살아있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벧전 1:4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기독교인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죽음에 대해 큰소리 칠 수 있는 것, 죽음의 위협에도 당당할 수 있는 것, 죽음에 대해 승리를 선언할 힘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4절에 유업(개역: 기업)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생업, 직업이라고 바꾸어도 좋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기업이 '무너졌다, 도산했다, work out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가끔 들려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이런 일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기업이 무너지고, 일터를 빼앗겼습니다. 이럴 때 그들은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히브리서 10장 34-35절입니다: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 10:34-35)

 

도대체 그분들이 어떤 사람이길래, 자기를 빼앗기면서도 땅을 치고, 슬퍼하고 복장이 터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할 수가 있습니까? 이런 담대한 모습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야생동물의 밥으로 그들의 몸뚱이가 던져지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칼로 창으로 찔리면서도 찬양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면서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당당하게 걸어가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당당한 저력은 어디서 유래되었습니까? 바로 천국과 영생을 믿는 신앙이예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물론 초대교회성도들이 지녔던 천국신앙은 저 하늘만 쳐다보고, 이 세상에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의 부정부패에 발을 담그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천국 신앙은 현실에 선한 영향력을 깊이 끼쳐서, 현재를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더욱 진지하고 바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벧전 1:4에 ‘유업을 잇는다’는 말(클레로노미아 klhronomi,a, aj)))은 제비(klh/roj)를 뽑아 나눈다(네노마이 ne,nwmai/ noe,w)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제비를 뽑아 가나안 땅을 나눠 준 것(수 14:1-2)을 가리킵니다. Good News Bible은 이 부분을 ‘천국의 신령한 기업을 얻게 될 것을 낙으로 삼고 기다리게 하셨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번역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란 과연 어떤 것입니까?

 

1) 이는 몸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 성도는 몸의 부활을 얻습니다.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이라고 한 이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의 몸과 같은, 참으로 신비롭고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2) 그리고 그것은 또한 천국의 생활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천년이 하루같이 여겨지는 그런 천국의 생활을 즐길 것입니다.

 

3) 또한 그것은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으며 사는 우리의 현재 생활을 가리킵니다. 고난 중에도 우리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기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진정 소망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지금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입니다. 배부르게 살면서 오히려 비젼과 꿈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면서 소망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에서 지옥을 가리켜 ‘소망이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지옥문 입구에는 ‘이곳에서는 일체 희망을 버려라’는 표어가 써 있다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은 진실로 지옥입니다. 지옥 같은 삶은 고난에서 오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고난은 우리를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절망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당시 성도와 교회는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어 매를 맞고 심지어 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겪은 핍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에게 사도 베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소망을 발견하고, 그 소망을 굳게 붙잡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모두 다 잘 하셨습니다’라며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2002년 미국의 신경과 의사들이 모이는 신경과학회 학술대회장에서 의학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피아니스트 리온 플라이셔(Leon Fleisher)가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가 신경과학학회가 주는 공로상을 받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사정은 이렇습니다.

 

플라이셔는 여덟 살 때부터 연주회를 한 천재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는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피아니스트란 말을 들었습니다. 열여섯 살 때 뉴욕 필과 협연을 했고, 열일곱 살에 카네기 홀에서 독주회를 가졌을 정도로 앞날이 창창했습니다. 30대 초에 그의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오른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서른 여섯 살에 음악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짜를 플라이셔보다 한 세기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유명한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모차르트가 다시 살아온 것 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이란 형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철학 분야에서 다른 한 사람은 음악 분야에서 천재라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의 생이란 것이 순탄할 수만은 없었던지,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부상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른손을 잘라내야 했습니다. 오른손이 없는 피아니스트,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생은 끝장났듯이 보였습니다. 그 자신은 물론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뒤 10여 년 동안 방황하던 그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아는 작곡가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위해서 왼손만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청에 응해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준 작곡가는 모리스 라벨이었습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가 바로 그 곡입니다.

 

이 연주가 성공하자 그 이후로 많은 작곡가가 그를 위해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곡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한 손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곡이 무려 1천곡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시 플라이셔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도 비트겐슈타인처럼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휘자로 컴백했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발전된 의학의 도움을 받아 1995년에는 드디어 오른손으로도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손 Two Hands>이란 제목의 음반도 냈습니다. 그는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신경계통의 병을 세상에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홍보대사 역할도 열심히 했습니다. 신경과학회 공로상은 이 활동 때문에 받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플라이셔는 모두 피아니스트에게 생명과 같은 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작 피아니스트의 진정한 생명은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진정한 생명은 가슴 속에 들어있는 음악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신체 기관 어느 한 부분의 결손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벧전 1:3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렇습니다. 만일 그 사람에게 소망이 살아있다면, 그는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산 소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우리의 아버지시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일회적이거나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신앙만 확고하다면, 그 소망은 지금 코로나19와 여러 가지 사회상황으로 인해 불안하고 흔들리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는 소망을 품고 생활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에, 성도인 우리의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품은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향한 소망은 우리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소망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처지에서나 우리를 힘차게 일어서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8번째 가정(영상)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 예배를 드리며 우리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는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는 말씀을 영혼에 새깁니다. 이번 주에 아침마다 눈을 뜨자마자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암송하면 더 좋습니다. 이것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영혼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오늘 위기와 혼란을 겪는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굳게 붙잡게 하시고, 최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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