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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열왕기상 17:19-24, 사도행전 3:6-10) 운영자 20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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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길에 생긴 일입니다. 그들이 만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움직이는 것을 자기 맘대로 못합니다. 어느 곳으로든 움직이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둘째, 구걸을 해야만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서러운데 구걸을 해야지만 목구멍에 풀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보다 더 불행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교회당 문 앞에 있었으나 예수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오늘 하루도 먹고살고자 구걸을 하기 위하여 성전 문 곁에 앉아 있습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그 문의 이름입니다. 미문(美門), ‘아름다운 문이지요. 성전 문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그 옆에 너무도 불행한 사람이 날마다 앉아 있습니다. 이 보다 더 오늘의 교회와 예수 없는 이들의 형편을 적나라하게 대조시키는 그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걸인 앉은뱅이를 주목했습니다. 주목했다는 말은 지나가다가 보이니까 그냥 무심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희랍어로 보면 이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았다는 뜻입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구걸하는 소리를 듣기는 듣되 건성으로 듣고 대개 못 본척하고 지나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앉은뱅이의 영혼의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춰 주목해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 불쌍한 사람을 향한 자비심이 충만했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면 주목해서 그 영혼을 지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영혼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이 쓰여지던 시대에 유대인들은 나면서부터 불구자가 된 사람은 죄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과 절대로 신체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비심이 발동할 때 기껏해야 푼돈이나 던져주며 "쯧쯧" 혀를 차면서 지나갔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유대 관습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자의 손을 직접 움켜잡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하나님께 힘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일어서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환자를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 행동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이로써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신체의 치유와 함께 영혼의 자유까지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 나와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재주와 실력을 발휘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많이 아는 것이나 많이 가진 것을 내보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을 뻐기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은도 금도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가장 귀하고도 귀한 예수님을 만나러 온 내가 소중하고, 가장 귀하고도 귀한 예수님을 만나러 온 우리교회 식구들이 소중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본받아,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에수 밖에는 없네찬양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가득 내려주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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