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가 아니다
- 운영자 2025.12.13 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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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셋째주일]
나는 ‘그’가 아니다
이사야 62:10–12
요한복음 1:19–28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밀려나고, 부수적인 것이 오히려 중심을 차지하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사회뿐 아니라 신앙의 자리에서도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셔야 할 자리에 우리가 서려 하고,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야 할 자리에 교회와 사역,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앞서려 합니다. 대림절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너는 네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오늘 우리는 세례 요한의 고백을 듣습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그를 그리스도로 오해하는 이들까지 있었지만 요한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가 아니다.” 이 고백 안에는 대림절 기다림의 본질과 신앙이 회복해야 할 정확한 자리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사야 62장에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길을 닦으라(10)”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스스로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중심에 서서 자신을 드러내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맡기신 역할은 분명합니다. 오시는 분을 위해 길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전제합니다.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구원은 백성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빛이 오도록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빛이 세상에 들어오도록 섬기는 통로입니다.
이 구약의 부르심은 세례 요한의 삶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냐?” 요한은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기대를 애매하게 붙잡지 않았고, 자신을 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에도 그는 같은 대답을 합니다. “아니다.” 이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왜곡하지 않으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소리다.” 소리는 잠시 울렸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있었기에 길이 열리고, 그리스도는 더욱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라질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이런 삶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내가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고, 내 이름이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그리스도가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낮아질 때 그리스도는 더욱 높아지시고, 우리가 물러설 때 그분의 빛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 대림절의 신비와 기쁨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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