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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빚진 자 (합 2:1-4; 롬 13:8-14)
운영자 2018-12-08 추천 1 댓글 0 조회 127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13:8)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빚진 자입니다. 무엇을 빚졌습니까? 사랑에 빚을 졌습니다. 누구에게 빚을 졌습니까?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평생을 갚아도 값지 못할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8:1-2 참조) 그 빚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은혜는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요,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생명의 빚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잊는다면 우리는 사랑과 생명의 빚진 자라는 사실도 망각합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꾸어 얻은 귀한 생명인데도 우리는 실제로 살아있는 우리 자신이 그 귀하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찬송 불렀던 것처럼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이것일세.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찬송가 3111)이라고 진심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채권자형으로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채무자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채권자형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아이들 가운데도 부모님이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부모님이 자신을 낳았으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은 별로 없고 바라는 마음만 한없이 큽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부모님을 졸라서라도 얻어내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라다 보니 나중에는 자신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님에게 차마 못할짓까지 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위와 달리 채무자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채무자형의 사람은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도 빚을 지고 있고, 친구들에게 빚을 지고 있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와 교우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다니고, 하나님 앞에서도 늘 빚진 사람처럼 -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에 감사할 것 뿐입니다. 자신이 더 베풀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늘 안타까울 뿐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이나 교회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미안할 뿐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유형가운데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채권자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채무자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13:11-14 말씀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를 회개하게 한 말씀입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모니카)에게 자랐으면서도 30년 동안 기독교를 떠나 방황했습니다. 주후 386년 그는 밀라노에서 그동안의 방탕방황을 애통해하며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웃집에서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라틴어로 "Tolle lege, Tolle lege(=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라는 소리였습니다. 성경책을 펴니 롬 13: 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어거스틴의 마음에는 구원의 빛이 강렬하게 들어왔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독교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교회에 남긴 선한 영향력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3:11)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촛불 두 개를 밝혀 놓고 아기 예수님이 구원과 사랑과 은혜의 빛으로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 복된 절기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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