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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관심을 나누며 함께 사는 세상 (창 32,24-32; 마 17,14-18) 운영자 201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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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에게는 간질병이 있었습니다. 선교여행을 하다가도 그 병이 도지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누워서 그것을 진정시킨 뒤에야 다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그 병을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시가 곧 장애입니다. 만일 자신을 괴롭히는 이 장애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매우 교만하게 살았으리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그 가시로 인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인물들을 살펴보면 저마다 결정적인 가시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도 그런 사람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홀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그 날 야곱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그의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야곱이라 불렀던 이름이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로 변했습니다. 둘째로 야곱은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과 씨름을 하던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자,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야곱의 고관절(환도뼈)이 어긋났습니다. 야곱은 이 날부터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목축을 하며 거친 광야를 헤치고 다녀야 하는 그에게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시였을까요?

 

나중에 야곱에게 죽을 시각이 다가왔습니다. 그때 야곱은 아들 요셉을 앉혀놓고 그 환도뼈에 아들의 손을 대게하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자신을 평생 괴롭힌, 가장 고통스럽고 가시같이 아팠던 그 부분인데,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했을까요? 첫째로 육체를 괴롭히는 그런 장애를 안고 살면서도 이제까지 살아냈다는 긍지와 자부심의 표현입니다. 둘째로 자기 몸의 가시가 자기를 진정 사람답게 살게 만들었다는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진실로 그의 장애는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육체의 장애가 자기에게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긋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가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로 살게,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인생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인 아이를 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와 비교해서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그 장애인이 예수님 앞으로 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그 아이를 고쳐줄 능력이 없어 탄식을 할망정 그가 자신의 곁에 다가오고, 그가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2 천년 전에도 이랬는데, 하물며 새천년 시대라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서지역에 세우려는 장애인학교가 방해를 받는 일은 참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3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세계 11위입니다. 이렇게 경제만 발달한다고 선진국이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진정 선진국이 되려면 사람 귀한 줄 아는 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는 무릎을 지역주민에게 꿇어야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 얼굴에 마음에 눈물이 흐르게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 각 사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따스하게 배려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다 함께 같이 어울려 사는 때가 속히 오기를 우리 모두 마음모아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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