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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마니아(민 9,15-19; 행 26,13-18) 운영자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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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을 향해 행진했습니다. 그 내용을 담은 민수기 9:15-23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라는 말이 8번이나 되풀이 쓰인 사실입니다. 그들은 행진하기 전에 그리고 진을 치고 머물기 전에 반드시 구름기둥이 어떻게 움직이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여호와의 명령이 없으면 그냥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앉아 쉬고 싶어도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여호와의 명령이 떨어지면 몸을 추스르고 짐을 챙겨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구름기둥 마니아처럼 보입니다. ‘마니아라는 말은 애호가 또는 광()이란 말로 번역됩니다. 성경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행 26장입니다. 체포된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예수님은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난 총독 베스도가 외친 말이 바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4)입니다. 여기 두 차례에 걸쳐 사용한 말(미쳤다)이 그리스말로 마니아입니다.

 

그 재판정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왕위에 앉아 있는 아그립바, 보석으로 치장한 베니게, 총독의 관복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는 베스도, 고급 장교와 행정관들이 위엄있게 앉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슬에 묶인 죄수였습니다. 머지않아 로마로 호송될 것이며, 거기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그들을 보며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디서 언제 누가 자기를 해칠 지, 모함할 지, 그 자리에서 떨려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사는 그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무리를 보시며 목자없는 양같이불쌍히 여기셨던 것 같이 사도 바울은 그 심령 깊은 곳에서 구원을 갈구하면서도 세상의 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을 보며 사도 바울을 할 수만 있으면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놓고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며 열정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마니아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견뎌내시고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기다리거나 참거나 물러서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기다릴 때 속상하고, 참느라 몸져눕기도 하고, 물러서느라 굴욕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진정으로 전진하려면 성취하려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기다리고 참고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후퇴하고 멈추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성공에서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고, 실패에서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얻음과 잃음, 전진과 후퇴,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이 뒤엉켜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이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각각의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입니다.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면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눈물과 한숨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면 용기와 소망이 샘솟아납니다. 성취와 성공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면 이번의 기쁨이 다음번의 기쁨으로 이번의 행복이 다음 범의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 마니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마니아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마니아로 살기에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기쁘고 명랑하게 사는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전진할 때 주님과 함께, 중단하고 머물 때 주님과 함께, 후퇴할 때 주님과 함께하며 인생의 행복과 성취를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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