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왕상 19:2-8 ; 갈 2:19-21) 16.6.19 | 운영자 | 2016-06-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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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기자는 선한 목자의 사역가운데 하나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일"이라고 노래합니다. 소생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낙심 혹은 낙망입니다. 우리 영혼이 소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낙망한 까닭입니다. 이는 마음이 눌려있고 의욕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움직이기조차 싫어지고 더 이상 살기조차 싫어집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이런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 다윗 엘리야 등 신앙의 거인들조차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럴 때 어떻게 소생될 수 있을까요? 1. 육체의 피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엘리야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5절에 보면 그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쉬게 하셨습니다.(6-7절) 하나님의 치유는 일차적으로 육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육체적으로 탈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한 목자는 영적인 처방부터 먼저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낙망은 반드시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원인이 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 아니 많은 경우 우리가 정신적으로 낙망하는 이유는 신체적인 이유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을 예방하는 모든 안내 책자들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수칙이 있습니다. ‘과로를 피하고 휴식을 충분히 취할 것 영양관리와 자신에게 맞는 수면 습관을 유지할 것 경쟁하며 사는 생활태도를 버리고 즐겁게 살아갈 것’ 등이 반드시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순조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2. 영적인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낙심에서 소생하는 길이 육체적인 관리만 잘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육체적으로 소생하기 시작한 엘리야에게 영적인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엘리야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이 물으시고 10절에서는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교제입니다. 아무도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가 회복되기까지 영육간에 소생하였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영혼의 귀가 열려있고 기도의 숨결이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라면 이제 시편 23:3처럼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셨도다"고 고백해도 좋습니다. 열왕기상 18-19장을 읽으면 피할 수 없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 아세라 선지자 400인 등 850대 1의 결전에서 그렇게 당당하던 용기충천하던 엘리야가 무슨 이유로 자기 생명을 포기할 생각을 할 정도로 약해졌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 대답이 왕상 19:10절에 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나만 남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기 곁에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자기 곁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 억센 이세벨의 공격에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기를 도울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이런 뜻에서 사도 바울의 신앙은 매우 본받을 만합니다.(갈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엘리야처럼 우리도 세상 살면서 때때로 불안 두려움 초조함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주어진 생활 현장에서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외로움을 느낄 때는 없습니까? 나만 덩그라니 남아 혼자라는 느낌, 텅빈 들판에 나만 남아 있다는 느낌,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왠지 나만 홀로 남아 있다는 느낌. 사업을 하면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살림을 하다가도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생각! 이런 고독함을 때때로 느껴보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럴 때마다 ‘이제부터는 네 안에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거야’라고 다정하게 속삭이시는 주님을 만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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